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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Jan 26. 2019

5. 내 작업, 내 일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작가

 퇴사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회사생활과 함께 병행했던 내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일들에 대해서도 정리해보고자 한다. 힘든 일도 많고 굴욕적인 일들도 많았지만 또 그만큼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낀 일들도 참 많다.


 회사생활을 하기 전의 나는 아무 경력이나 기술도 없는 상태에 그저 전업 디자이너 혹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 하나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취업을 하고 나서는 퇴근 후 꾸준히 그림을 그렸고 조금씩 기술적인 부분이나 일적인 부분의 기회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목표는 안정된 작가로서의 자립이었다. 첫해 여름에는 운 좋게 작은 규모의 그룹 전시에 참여를 하게 됐다. 또 그해 겨울에는 한 공모전에서 대상에 뽑히는 일도 있었다. 이 공모전에서 수상한 그림에 대한 사연이 재미있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 나는 누나 집에서 백수로 지내며 이것저것 그림 작업을 했었다. 그 시기에  한 중소기업의 티셔츠 공모전에 그림을 출품한 적이 있었다. 열정으로 꽉 차 있던 당시의 나는 이 기회를 스스로의 재능을 증명할 기회이며 동시에 이력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여겼다. 그 공모전은 중복 출품이 가능한 공모전이었다. 때문에 열정적으로 가능한 많은 티셔츠 디자인을 응모했다. 그리고 얼마 후 공모전은 마감이 됐다. 1등 상금은 30만 원이었다. 그다지 유명한 브랜드의 공모전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법 긴 공모기간에도 불구하고 응모된 전체 작품수는 100개 안팎이었다. (공개 공모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의 게시물을 확인 가능했다.) 응모된 작품 중에서 내가 응모한 그림의 수는 무려 40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가관이었다. 공모전 게시물 작성자의 40%가 ‘김나훔’인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경악할 일은 결과 발표날 수상작 3위 안에 내 디자인이 하나도 뽑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달 내내 거기에만 달라붙어 가족들에게도 ‘세상이 내 재능을 알아줄 거야!’라고 큰소리를 쳐놨는데…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고 모니터 앞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저딴 디자인이 뽑히다니', '감각 없는 놈들… 망해라'

철없던 나는 분한 마음에 그렇게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공모전 결과에 대한 원망과 자괴감이 차츰 사그라질 때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저주를 퍼부었던 그 회사였다. 용건은 이랬다.


“나훔님! 아쉽게도 당선되지는 않으셨지만, 월등히 많은 작업을 응모해주셔서 감사의 뜻으로 저희가 포트폴리오 북을 만들어 드리려고 하는데요! 혹시 직접 뵙고 전달해드릴 수 있을까요?”


 언짢은 기분과 창피함에 거절하려고 했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한 달 동안 내 노력에 대한 작은 위로의 보상이라도 받는 편이 낫겠다는 마음으로 생각을 선회했다.

 다음날 신사역의 한 카페에서 회사 관계자 분을 만났다. 그녀는 내 작업물이 잘 정리된 포트폴리오 책과 자사의 후드티 하나를 내게 전달했다. 그리고 짧게 인터뷰를 할 수 있냐 물었다. 부끄러움에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선물을 받은 이상 내뺄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녀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녀는 몇 가지 질문을 하였고 우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 영감을 어디서 받으시나요? ”

“ 제 영감을 왜... 어떻게 하면 공모전에서 100프로 떨어지는지 알고 싶으신가요? 하하하”

“ 하하하하하하하... ”

“ 하하하하하하하... ”



내 진심은 이랬다. (2013)


 우린 둘 다 크게 웃었다. 속상해하면서도 이 코미디 같은 상황을 즐기는 것 같은 내 안의 변태를 느꼈다. 그렇게 복잡 미묘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마 위의 공모전에서 떨어지고 서둘러 알바 자리를 구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그 후에 취업을 하고 나서 그 해 2012년에 상금이 5배나 높은 대기업의 공모전에서 나는 대상을 수상했다. 바로 그 그림이 위에서 말했던 40개의 낙선 작품 중 하나의 모티프가 된 그림이었다. 그 작업물이 1년 전 티셔츠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더라면 위와 같은 쾌거는 없었으리라… 아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구나- 생각했다.

 합격자 발표날이 생각난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전화를 통해 당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해 몸을 이리 왔다 저리 왔다 하며 전철 안을 서성거리다가 역 밖으로 나와 소리치며 집으로 달려왔다. 그날 저녁엔 마침 엄마가 서울로 올라와 집에서 식사를 준비해주고 있었다. 집으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나 대상 뽑혔어요~!"


그러자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뛰어와 나를 안아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엄마가 날 안아준 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마품이었다. (그 이후로는 이 정도의 임팩트 있는 일은 없었다. '엄마의 포옹' 안녕...) 그런뒤에 엄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 예전에 사진 하겠다고... 했다가 또 음악 한다고 말했을 때처럼,

그림 그리겠다고 할 때도 그러다가 말 줄 알았는데...

정말 네가 해냈구나. 재능이 있나 보다. 아들 장하다."


약간 코 끝이 찡해졌다.



너 많이 신났었구나 (2012)




 두 번째 해인 2013년에는 개인전시를 할 기회를 가졌다. 이 전시를 하게 된 계기가 또 재미있다. 제안을 받기 4년 전, 난 전역 후 복학을 했다. 그 해 여름방학, 지방에 기차여행을 다녀와 사진 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다. 운 좋게 여행기가 당시 네이트 메인에 노출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가 되었다. 그때 내 블로그를 알게 된 사람이 그 이후로도 몇 년간 내 온라인 활동을 지켜봤었고. 4년 뒤, 마침 갤러리의 큐레이터로 취직을 해 내게 전시를 제안한 것이다.


 “뭐... 사진 전시도 좋고 그림 전시도 좋아요. 우리 재밌게 한번 기획해봐요. ”

 "음? 제가 사진도 찍었다는 걸 어떻게 아세요?"


 그때 자초지종 설명을 듣고 난 뒤의 얼떨떨한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여행기를 썼던 당시의 나는 적성에도 맞지 않은 요리를 전공하고 있었고... 심지어 공부는 뒷전으로 둔 채 사진과 글이나 끄적이며 아무 영양가 없는 곳에 시간을 투자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림이라는 엉뚱한 곳으로 내 삶은 흘러와있었는데 이 곳에서 이런 뜻밖의 값진 인연을 만난 것이다. 과연 쓸데없이 보낸 시간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오프라인상에서 내 그림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게 되었다. / EDC x 콜라보 개인전 ( 2013)


EDC x 콜라보 개인전 - 강남 학동 유로디자인센터 ( 2013)



 같은 해인 2013년 말부터는 직관적인 유머 코드를 앞세워 내 그림이 운 좋게 어느 정도 관심을 받게 되어 수많은 클라이언트들과 작업할 기회가 생겼다. 약 3-4년간은, 조금 과장을 보태어 정말 대한민국에 중소기업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수많은 대기업들과 협업을 진행해본 것 같다. 수많은 기업과 수많은 직종, 직급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다. 이런 직업을 가진 것에 감사했다. 또 실제로 수익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이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회사를 관두고도 안정적인 삶을 영위해갈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때는...그랬다...-  (덕분에 학자금 대출이나 가족들의 빚과 같은 나 그리고 가족들의 발목을 잡는 것들을 제법 청산할 수 있었다. ) 이 기간 동안에 '작가님'이라는 소리를 처음 듣게 되었는데 그 단어가 정말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 창작하는 사람이면 다 창작가... 즉 작가지...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자' 생각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작가님'이라는 말은 듣기에 조금 낯간지럽다. 하루키의 말을 빌려, 그 칭호는 마치 '채소가게 님' '생선가게님' 같은 느낌이라 이따금 "아, 예, 예. 어서 옵쇼" 하고 두 손을 비비며 나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운좋게 '내리면 탑시다' 포스터가 온라인상에서 히트를 쳤다. 벌써 6년전 그림인데... 내 대표작은 아직도 이 그림으로 설명된다. 다시말해서 사골이다. (2013)
처음으로 의뢰를 받았던 작업. [독립장편영화 '잉투기' 포스터] (2013)




 다섯 번째 해 2016년에는 그림 에세이 ‘뭐'를 출간했다. 20대가 끝나기 전에 그동안 그려왔던 그림들을 엮어 책으로 내보자는 출판사의 제안이었다. 돌아보면 너무 부끄럽고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책이었지만 어쨌거나 내 마지막 20대에 용기 내어 도전했다는 성취감만은 있다. 후회는 없다.

 


서점에 내 이야기의 책이 비치된다는 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2016)
본인도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들쑥날쑥한 책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열심히 '머리말'에서 밑밥을 깔고 있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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