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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Jan 15. 2019

4. 인현동 인쇄골목 (3)

내 인생의 은인

 회사가 생김으로 내 형편은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첫째로는 경제적으로 안정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퇴근하고 나서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내 그림 작업에 집중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전 날 집에서 작업한 그림을 회사에서 인쇄하여 내 눈으로 실물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보다도 내 삶에 가장 좋은 영향을 주었던 일은 바로 사장님과의 정서적 정신적 교류였다. 특히 가끔씩 갖게 되는 사장님과의 저녁 술자리는 내게 늘 배움의 장이었고 설레는 일이었다. 평소에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 그림을 그렸지만 가끔 일이 고되거나 사장님이 약속이 없을 때면 “김나훔이 오늘 고생했는데 내가 고기 사줘야지?”라고 말을 건네면서 일종의 데이트 신청을 하셨다.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사장님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수평적인 사고를 갖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이런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죽어가는 노인은 불타는 도서관과도 같다고 했던가.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몸소 체험하게 됐다

겁을 먹을까? 생선을 먹을까? (2012)



 사장님은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라던지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또 같은 연배인 친구분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야속한 시간 앞에 속수무책인 인간이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의미 있게 살 수 있을지, 삶이란 것이 얼마나 다양하며, 또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의지로 살아간다는 일이 왜 아름다운지… 와 같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우린 많은 생각을 나눴다. 수십 년간 크고 작은 사업을 운영하고 또 무너트리고 다시 일으키며 끝내 이렇게 작은 사업으로 정리를 하기까지, 다사다난했던 사장님의 치열한 삶 속에서 난 간접적이나마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사람의 인생과 경험들을 꿀꺽 삼켜 온전히 내재화시킬 수 있다면 나도 정말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확신이 들었다. 사장님의 그 태도에는 강압적이거나 오만한 태도는 전혀 없었다. 되려 내 생각에 대해서도 진지하고 깊게 이해하려는 그의 태도에서 나는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나이 차이는 37년이나 됐지만(사실 이렇게 숫자로 적어본 것은 처음이다. 정말 그렇게나 차이가 났구나!) 나는 그 긴 시간도 같은 생각, 정신, 취향을 공유할 수 있다면 친구가 되는 데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더 이상 나보다 나이가 몇 년 앞선 누군가가. 그 이유만으로 내 의견을 묵살하거나 무시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건 단순히 윗사람을 내가 넘을 수 있다는 반항의 깨달음이 아니라, 나보다 더 어린 누군가와도 충분히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주말 친구들과의 선약이 있었음에도 사장님의 약속 있냐는 질문에 선약을 취소한 적도 있다. 친구에겐 “아 미안... 오늘 회식이 잡혀서..”라고 난처한(척) 말했고 친구들은 보통 “저런 안됐구나”하며 아쉬워했다. (그건 지금 생각해보니 참 미안했다 친구들아) 어쨌든 만약 피시방 네 군데 중 한 곳에서라도 연락이 왔었다면 나는 김 사장님을 뵙지 못했겠지. 그렇게 생각해보면 아찔해진다. 이때부터 나는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는 뜻의 ‘대기만성'이라는 말을 믿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위 일들처럼 내게 굴욕감과 자괴감을 선사했던 일이 되려 전화위복이 되어 부메랑처럼 더 좋은 일로 돌아온 적이 몇 번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회사생활에 대한 내 애정에 이끌려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기에 다다른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새삼스레 사장님과 했던 추억의 시간들이 떠올라 기분이 이상하다. 첫해에 사장님과 소주를 너뎃병을 마시고 사장님 곁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는 둥... 지킬 수도 없는 의리의 말들을 했던 것이 생각나 부끄러워진다. 물론 사장님은 내 치기 어린 배짱에 웃으며 손사래를 치셨다.


 당시의 정서적 안정감과 마음의 자유로움 덕분에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일하는 내내 즐거운 생각과, 재미난 영감들이 늘 내 안에 찾아왔던 것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때 떠올랐던 생각들이나 깨달음이 내 메모장, 타임라인, 사진앨범 속에 차곡차곡 모여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소중하고 찬란한 모습으로 마음 깊숙이에 남는다.



명함을 인쇄해서 수출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내 명함도 내 방식으로 만들어 봤다. (2012)
명함을 인쇄해서 수출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내 명함도 내 방식으로 만들어 봤다. (2013)








사장님과 술자리 후에 타임라인에 적어놓은 회식 후기(?)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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