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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Feb 19. 2020

10. 소중한 인연

바보 같은 게시판 익명글이 가져다준 소중한 인연

 마음의 골이 깊어가던 시기, 베를린의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알게 됐다. 난 거기서 꽤 오랜 시간 검색과 눈팅을 병행해가며 정보를 얻고 있었는데 어느 날 뭔가에 홀린 듯 게시판에 글 하나를 올리게 되었다. 어차피 작성자는 익명의 닉네임이니까 부담 없이 내 모든 것들을 적었다. 기억을 더듬어 그 내용들을 간단히 나열하자면 이렇다.


 나이, 내가 지금까지 모아놓은 돈, 현재의 직업, 자라온 환경, 학력, 경력, 현재의 고민, 앞으로 베를린에서의 계획(아주 추상적인), 지금 나의 심리상태, 베를린에서의 생활에 대해 궁금한 점 등..  일종의 자가치료와 같은 몸부림 같은 것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지만, 난 그 게시물에 온갖 개인사와 고민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글 말미에는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 그렸던 그림 1,2개를 첨부했다. 그래픽 툴을 활용해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데, 포트폴리오를 통해 지원을 할 때 유리한 분야의 직업학교가 있는지를 묻기 위해서였다. 조회수는 200이 넘어갔지만 댓글은 단 하나도 달리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길고 지루한 신세 한탄에 진지한 답변을 해줄 사람은 없다.


그렇게 또 한 번 실망을 하고 있던 오후 어느 날.

페이스북 메신저로 긴 글 하나가 도착했다.

메시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 안녕하세요 나훔님.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놀라시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평소에 나훔님의 일러스트가 참 괜찮다고 생각했던 1인입니다.

한인 홈페이지에 올리신 글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메시지를 드려요.

불쑥 이렇게 메시지를 드리는 게 실례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베를린에서 사는 Y라는 학생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내가 썼던 글을 읽고 연락을 준 것이다. ‘그런데 닉네임으로 작성한 일종의 익명 게시판이었는데 어떻게 날…?’ 이윽고 게시물에 첨부했던 내 그림이 떠올랐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했다. ‘그 사이트에 내 그림을 아는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심지어 내 온갖 개인사와 정보를 실컷 떠들어댔는데...’ 잠시 엎드려 부끄러움을 삭혔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글을 읽어 내려갔다. 내가 썼던 장문의 글만큼이나 진심을 담은 답장이었다. 내 많은 질문들에 순번까지 붙여가며 하나하나 정성어린 답변을 해주었다. 거기에는 정중함과 읽는이에 대한 배려, 이해, 애정이 있었다. 글을 집중해 읽어 내려가는 동안에 내 부끄러운 감정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으로 바뀌었다.


 Y학생은 내 그림을 좋아한다며 아마 독일에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설령 유럽에서의 장기플랜이 틀어지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분명 인생에 필요한 어떤 배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너무 벅찬 감동을 느낀 나머지 바로 답장을 하지도 못하고 한참이 지나 늦은 밤이 되어서야 생각을 정리해 감사의 답장을 보냈다.


 그 후로도 한 두 분 정도의 베를린 한인 분들이 내 게시물을 읽고 SNS를 통하여 메시지를 주었다. 정말 놀라웠다. 적당히 읽고 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성심성의껏 베를린에 대한 정보나 개인적인 견해를 말해주었다. (물론 그쯤 되어서는 부끄러움도 배가 되어서 한인사이트의 게시물은 지웠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을 값진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약했던 내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나조차도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과거의 내 그림들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를 불러와 나를 일으켜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잊고 살던 삶의 이치를 떠올렸다. 내가 치렀던 경험이라는 작은 점이 당장은 보잘것없어 보여도 미래의 어떤 점으로 다시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은 타인은 물론이고 나 자신조차도 결코 장담하고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Y는 나보다 네 살 위의 형이고, 그 날부터 내겐 베를린에 가서 가장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이 되었다. 훗날 베를린에서도 우리는 종종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형은 내가 불안해하고 힘들어할 때마다 인생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며 격려해주었다. 오랜만에 Y형이 보낸 2017년의 메시지를 찾아 읽어보았다. 당시의 상황과 감정이 그대로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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