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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Feb 18. 2020

9. 왜 베를린이었을까?

베를린으로 가고 싶었던 이유

 

 유럽의 다양한 국가와 도시 가운데서도 왜 하필 베를린이냐고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사실 그 선택에 그럴싸한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왜냐면 딱히 명확한 계획이 없었기에...) 보통 유럽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 베를린이 언급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면에서 도시 선택은 그야말로 내 직관에 따라 결정한 일이었는데, 내 상상력이 키운 베를린(독일)이라는 도시의 이미지가 큰 몫을 했다. 그런 얄팍한 계획과 상상으로 선택해버린 요인을 굳이 꼽자면 네 가지 정도가 있겠다.


 첫째, 정말  황당한 이유이지만 도시의 어감이 마음에 들었다. 베를린. 그냥 이 이름이 좋았다.(조금 부끄러워서 셋째나 넷째쯤에 위치시킬까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요인이 큰 것만 같다.)


 둘째, 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럽여행에서의 아름다움이나 낭만적인 풍경에 대한 기대가 없다. 그렇다 보니 남들만큼 유럽에 대한 환상도 거의 없는데 독일이라는 나라 자체에는 관심이 있었다. 그 이유는 전쟁, 분단, 전체주의, 민족주의의 과오를 거쳐 통일을 이룩하고 또 후세에 계속해서 반성하고 성찰하려는 정부의 노력 때문이다. 평소 다크투어 같은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런 과오와 반성 속에서 인간은 성장한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전쟁의 상흔과 영원한 반성의 과제를 안고 있는 독일은 나에게 늘 경험해보고픈 미지의 나라였다. 더욱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군대를 다녀와 살고 있는 내가 그러한 관심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에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패널로 나와 의견을 말하는'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를 즐겨 봤는데, 독일 대표였던 다니엘 린데만의 의견이나 소통 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 것도 선택에 한몫을 했다.


 셋째로 특히 춥고 해가 짧은 독일 동북부에 위치한 베를린은 당시의 내 내면 상태와 어떤 부분에서는 맞닿아있지 않은가 하는 혼자만의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무채색의 적막한 도시라야만 내가 느끼는 삶의 어둠이나 우울도 유난스러워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사색을 하고 싶었다거나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하는 진취적인 느낌이 아니라 일종의 보호색 효과와 같은 개념으로 그곳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팀 아이텔과 같은 동독화가들의 건조하면서도 깊은 공허가 있는 그림들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 또한 내게 큰 인상을 주었다.


 넷째로는 직업에 대한 안정적인 대우가 있었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다시피 나는 내가 하는 그림이라는 일의 작업방식이 어느 순간부터 정신노동에 가깝다고 느꼈다. 내 정신상태나 기분이 어떻든 묵묵히 손의 기억과 감각을 따라 일을 할 수 있는 ( '편한 일', '단순한 일'이라는 개념이 아니다.) 전혀 다른 기술분야로의 이직도 진지하게 고려를 했던 것이다. 독일은 중소기업이 탄탄하고, 전문기술이 우대받는 나라이다. 박봉이긴 하지만 외국인에게도 기술 인력 교육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3-5년 정도 독한 마음을 가지고 언어와 기술을 익히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고 느꼈다.


 이렇게 적어 내려가다 보니 마치 과감한 판단력과 강단을 발휘하여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시 솔직한 심정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장강명의 소설 제목처럼 '한국이 싫어서'가 맞다. 덧붙이자면 '나 자신도 싫어서'가 맞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잘할 수 있을까? 정말 이 방법 밖에는 없는걸까? 머릿속은 고민과 조바심으로 가득 찼다.


 그 누구도 방향을 제시해줄 수 없으며 책임져 주지 않는 오직 나만의 인생.

예전에 나를 가슴 뛰게 만들고 신나게 만들었던 그 명확한 사실이 이젠 너무 가혹하고 두렵게 느껴졌다.


 회사 인수인계를 마치고 모두가 퇴근한 저녁이면 사무실 컴퓨터로 어디에 집을 구할지, 어떤 직업군의 교육을 받으면 좋을지 구글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독일 사이트를 뒤졌다. 수많은 직업들이 나왔는데 그중에 관심 있게 본 직업은 목공사, 어린이 놀이터(장난감) 제작자였다.  속으로 "이것도 재밌겠네", "저것도 재밌겠네" 생각했다. 그렇게 모니터를 한참 바라보다가 순간 집중이 풀려 정적이 흐르는 사무실을 바라보게 될 때면, '지금 대체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생각이 들어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난 어디로 가는가 ?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아파하던  수유리 방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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