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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Jul 06. 2020

20. 파리에서의 L 누나

타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용기 있는 사람들

 지난 몇 년 사이에 새로운 도전을 위해 유럽을 향했던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가장 처음 만난 사람은 L 누나. 

 미대를 나와 대기업, 대학 겸임 교수 등...  여러 직장의 직책을 갖고 수십 년간 커리어를 자랑하던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그런 누나가 하던 일을 접고 2-3년 전부터 요리를 배우러 돌연 파리로 떠났다. 


 안정적이고 반복적인 삶의 패턴에 빠져 살다 보면 새로운 분야에 적극적으로 흥미를 갖기가 힘들다. 혹여나 어떤 분야에 마음이 이끌린다 하여도 선뜻 하던 것을 포기하고 전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주춧돌을 쌓기로 마음먹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특히 지구 반대편의 나라로 나가 고생스럽기로 유명한 요리를 배우기로 마음먹은 누나였다.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갑작스럽게 요리를 배우러 파리로 간다고 했을 땐 정말 많이 놀랬다. 당시의 나는 회사에 묶여있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그 도전을 응원했다.


 시간이 흘러 나도 회사를 관뒀고 유쾌한 마음은 아니어도 어쨌든 유럽 땅을 밟았다. 누나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지금은 어떤 생각이나 계획을 갖고 파리에서 지내고 있을까. 여러 궁금증이 떠올랐다. 


 베를린에 도착한 뒤 파리에 있는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잘 도착했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도착해서 어떻게 지내는지...  난 "밥은 적당히 대충 때우고, 오늘은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고 솔직하게 내 건조한 일상을 전했다. 그러자 누나는 "할 거 없으면 파리 놀러 와. 떡볶이나 해 먹자"라고 했다. 이건 마치 이웃주민이 저녁에 떡볶이나 만들어먹자고 말하는 것과 같은 담백함이 아닌가. 마침 누나도 시간이 남고 그동안 지내던 큰 집을 얼마 후에 빼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한다고 그전에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인터넷 창을 열어 베를린 테겔에서 파리 오를리 공항행 티켓 가격을 알아봤다. 약 90유로. 한화로 12만 원 정도였다. 한국에 있을 때 제주도 항공 티켓이 이 정도 가격이었던 거 같은데... 이 가격으로 국경을 오갈 수 있다니. '확실히 유럽은 다른 세계구나-'하는 생각과 동시에 유럽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더 신기하게 보일 수 있겠지 싶었다. 어쨌든 티켓을 끊고 며칠 뒤 파리로 향했다.


  밤 9시, 비행기가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짐을 내리며 입국 수속을 준비했다. 회사를 다닐 때 일본, 대만의 다양한 도시로 출장, 여행을 다녔던 나는 입국심사 때 찍어주는 입국확인 도장이 여권에 제법 많이 찍혀있다. 여행을 다닐 때 그 도장을 모으는 게 소소한 취미가 되었다. '드디어 파리 입국확인 도장을 찍겠구나' 생각하면서 걸어 나왔다. 그렇게 한참 걸어 나오는데 입국 심사는커녕 직원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더 걷다보니 바로 눈 앞에 넓은 대합실이 펼쳐졌다. 얼떨떨한 상태로 잠시 있자 멀리서 L 누나가 등장했다. 귀여운 A4용지를 들고 있었는데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 Bienvenue à Paris.(파리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김나훔. 떡볶이를 먹으러 파리에 온 당신!! "


 베를린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적막한 상황과는 상반되게 파리에 도착했을 때 이렇게 누나가 밝게 환대해주니 정말 고맙고 기뻤다. 그나저나 입국심사는 어떻게 된 걸까. 유럽끼리는 원래 심사 같은 거 필요 없다 이건가? 아니면 프랑스 말을 모르는 내가 이상한 구멍으로 나온 건 아닌가? 진실은 아직도 알 수 없다.


 늦은 밤 공항은 한산했고 우리가 탄 버스도 그랬다. 제법 추운 날씨였다. 누나는 내게 "올 겨울 들어 파리의 가장 추운 날 이래. 아주 좋은 날 왔어"라고 말하며 웃었다. 조용한 버스 안에서 우린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창밖으로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딱히 에펠탑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처음 보는 그 모습에 역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전부터 서울의 남산타워가 조금만 더 아름다운 조명으로 장식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하고 어김없이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에 잠겼다.



 늦은 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누나는 요리 신동(?)의 포스를 뽐내며 칼칼한 한식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내 말을 기억하고 떡볶이와 함께 맛있는 프랑스 맥주를 꺼내왔다. 밤늦게 이것저것 짐들을 들고 오느라 노곤한 상태였는데 짐을 풀자마자 이런 멋진 대접을 해주니 굳었던 몸과 마음이 단번에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10년 전에 요리를 하고 있던 나와 디자인을 하고 있던 누나. 지금은 누나가 요리를 하고 있고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어. 그치?"


우리는 지금 상황을 새삼 신기해하며 계속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과 더욱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의 장소 파리. 그곳에서 일주일간의 여정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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