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국수주의자
국수주의자로서 애국 활동에 호로록 매진하는데, 한 여인이 식당으로 쑥 들어온다. 런웨이 워킹처럼 보무도 당당하다. 그러나 아직 대기자 신분. 일행의 소환에 머쓱하게 뒤돌아선다. 그 순간, 기시감旣視感을 느꼈다. 낯이 익다. 어디서 봤더라. 혹시 그 방송인...?!
맥脈 떨어지면 죽는다. 면식의 맥박도 마찬가지. 국수 흡수에 일심하지 못하고 한눈파는 건 마장魔障에 걸려드는 것. 면식수햏자의 도리가 아니다. 국수 한 사발의 밑바닥 확인하고, 든든하게 식당을 나섰다. 거리를 거니는데, 심증을 뒷받침하는 물증이 포착됐다.
한 카페의 야외 테이블을 보자마자, 겉으로 외쳤다. "심봤다!" 이지애, 문지애 아나운서가 어인 일로 나란히 앉아있는가. 두 아나운서의 자태를 휴대폰에 담던 처자가 다가온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내게 폰을 내밀며, 청량한 성대로 묻는다. "저희들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나. 'One for All, All for One' 느낌으로 찰칵! 그녀에게 폰을 건네주고, 우릴 바라보던 한 staff에게 내 폰을 건넸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만난 동포들과 기념사진 찰칵!
좌청룡 이지애, 우백호 문지애. 풍수 고전이 전수한 바, 전형적인 명당혈 프레임이다. 쌍무지개는 행운과 평화, 희망을 상징한다던데, 쌍무'지애' 또한 그러하다. 고프 스트리트(Gough Street)가 호프 스트리트처럼 밟힌다.
희망찬 발걸음으로 돌아서는 순간, 내게 폰 맡겼던 여인의 안면이 비로소 인식된다. 방송작가인 줄 알았는데, 작가님이 참 단아하시다 생각했는데 김주희 아나운서였구나. 10년 전, 미스코리아 진 타이틀까지 몸에 둘렀던 분을 미처 몰라봤네. 미안해요. 앞으로의 맹활약 '주희 깊게' 지켜볼게요.
그러고 보니, 구기우남九記牛腩 간판 아래에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던 여성은 굉장히 서현진스러웠다. 뭐지, 이 조합은? 방송 3사의 간판 아나운서였던 이들이 셩완의 소호 거리에 총출동하다니.
나중에 알았다. <채널A>의 새 프로그램, '오늘부터 우리는 어깨동갑' 촬영차 아나운서 어벤져스가 홍콩에 모였다는 걸. 쾌락의 최상급을 일러 왜 '홍콩 간다'고 했는지 이젠 알 것 같다. 홍콩에 갔더니 뜻밖에 유쾌한 일이 생기는구나. 이것도 천일기도의 응답인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