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 <서른아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편지는 거의 쓰지 않는다. 메일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시대에 그 무슨 망측한 짓인가. 그런데, 해버렸다. 구태의연한 뻘짓. 서재를 치우다 발굴한 책 한 권 때문이다. 제목에 낚였다. 아홉수에 걸려 허덕이는 중생의 여린 염통을 은근히 건드렸다. 결정타를 날린 건 책날개의 한 문장. ‘서진은 독자의 모든 이메일에 답한다.’ 과연 그럴까. 실험정신이 발동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아지트에서 포착한 해돋이 풍광 곁들인 서신에 응답이 당도했다. 짧지만 정겹다. 힘겹게 올라간 산봉우리에서 외친 고함에 뒤따르는 아련한 메아리랄까. 이게 뭐라고, 위로가 된다.
그러니까 지금은 새벽 5시 반. 작가님 에세이의 에필로그를 더듬고 <사흘밤은 나와 함께> 홈페이지까지 둘러보고 서재를 나서니 해가 발그레 출근하고 있네요. 창고 같던 서재를 얼마 전에 재고 정리하듯 치웠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중요한 일이 많기에 자기 방도 치우지 않았던 것일까, 반성하면서 말이죠. 그러다 아내가 사둔 <서른아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를 품에 안았습니다.
마침 올해 제가 서른아홉. 천 일 동안(작가님이 90년대 최고의 발라드라고 생각하신다는 그 명곡) 일하던 직장을 지난 달에 벗어났습니다. 딱 지금 A면이 끝나고 B면이 시작된 셈이란 걸 작가님 문장을 통해 새삼 자각했네요(오토리버스 때문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뻔했습니다). 쉬어야 할 때 제대로 쉬어야 한다는 말씀도 적잖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잠시 쉬어갈 타이밍에 잘 쉬어볼 작정입니다.
먹을 걸 캐는 바다, 가장 깨끗한 바다와 가장 높은 산을 30분 만에 다 오갈 수 있는 섬에서 잘 지내고 계시죠? 쓸데 없는 시간의 쓸데 있음을 일깨워주신 분이 계신 곳에 저도 조만간 들러볼 생각입니다. 실패의 조각들 끌어모아 저도 뭔가 새롭게 배워볼랍니다. 그 길에 큰 용기 주셔서 감사하단 말씀 전하고 싶어 이렇게 끼적였네요.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건필하소서.
P.S.
1. 제 곁에도 보동이 같은 ‘보리’가 있었는데 이젠 부모님 자택의 감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습니다. 보동이 임종과 맞물려 출간된 ‘한밤의 아이스크림 트럭’은 제 딸에게 읽어주고 싶네요.
2. 첨부된 사진은 작가님 산문집 완독 후에 찰칵 찍은 해돋이 풍경입니다. 작가님 문장이 제게 일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습니다. 진심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