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과 찰스 디킨스
<서른아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올봄에 훑었습니다. 올해 제 나이가 제목에 박혀 있어서 유독 끌리더군요. 와닿는 대목이 많아서 안 하던 짓도 했습니다. 서진 작가에게 서신도 띄웠어요. 제주에 가면 댁에 들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 담아서.
쓸데 없는 시간의 쓸데 있음을 피력하는 그가 덤덤하게 속삭입니다. “실패의 조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성공의 경험은 너무 달아서 입안에서 녹아버리지만 실패의 맛은 씁쓸해서 오랫동안 남는다.”
다방에 가면 아포가토를 즐겨 시킵니다. 달콤쌉싸름한 게 인생스럽잖아요. 적당히 달고, 적절히 써야 풍미가 그럴듯하게 완성됩니다. 최근에 아내랑 맛본 <큐리어스>의 아포가토가 딱 그랬습니다. 아이스크림 백회百會에 꽂아둔 건조과일칩 덕분에 입가심 피날레가 진부하지 않더군요. 오래 남을뻔한 씁쓸함이 바삭한 새콤함으로 치환됩니다.
666 베리칩 우려하는 전단지를 종종 받는데요. 우리네 운명에 이미 칩이 박혀 있습니다. 쓰디쓴 형충파해刑沖破害 터널은 잘 말린 과일칩 하이웨이로 새콤달콤하게 이어집니다. 이런 얘기 들려주면 이런 말 하는 이들 꼭 있습니다. “어디서 약을 팔아. 그럴 리 없어!”
엄혹한 터널 끝에 과연 탄탄대로가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은, 일단 살아남고 보는 겁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기회는 있습니다. 그러니 손목을 칼로 썰거나, 소주에 농약 타서 들이키거나, 샤워기를 목에 칭칭 감는 행위 등은 자제해주십시오. 실패는 방향 바꿀 좋은 기회입니다. 연鳶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 가장 높게 난답니다. 처칠의 말입니다.
축술미丑戌未 형살 등에 묶여 무술년을 몹쓸 년으로 여기는 이들이 주변에 꽤 있습니다. 취업 면접에서 아포가토 에스프레소만 연이어 들이킨 스트레스성 난청 청년도 그중 하나. 택배 상하차 알바로 힘겹게 소일하는 마포의 청춘 토닥이다 <두 도시 이야기> 첫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찰스 디킨스는 연이어 씁니다. “믿음의 세기이자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면서도 어둠의 계절이었고, 희망의 봄이지만 절망의 겨울이기도 했다.”
최악의 절망으로 하염없이 춥고 어두운 이에겐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거니는 길에 거슬리는 돌이 있다면, 밟으면 됩니다. 어딜 밟느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지죠. 짱돌의 옆구리 건드리면 걸림돌, 정수리 백회에 발자국 꽂으면 디딤돌입니다. 발길 잘 돌리면 발복發福합니다.
사람은 발길 돌리는 대로
일이 허사가 되기도 하고
이(利)가 되기도 하니
발이 부모와 같은 것이니라.
발을 잘 돌리면
그 날 재수가 있어 좋은 일이 생기고
발을 잘못 돌리면
큰 낭패를 당하기도 하나니
일의 승패가 발 떼는 것에 달려 있느니라.
(道典 8:109:2~4)
선호도이후소先號啕而后笑. 먼저 울부짖고 뒤에 웃는다. 주역 천화동인괘天火同人卦 구오 효사입니다.
시간의 모서리에서 꺼이꺼이 꺾으면 최고의 시절이, 빛의 계절이 방긋 나타납니다. 무지막지한 무더위도 입추 지나고 처서 지나니 여지없이 꺾이잖아요. 바닥 찍었으니, 이제 바짝 도약할 차례입니다. 우쭈쭈 뚝. 으랏차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