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단상
이래도 되나 싶게, 이번 한가위는 한가로웠습니다. 적적하셨다는 부모님은 조안의 등장에 활력을 되찾으셨습니다. 모든 익은 것은 죽음을 갈망한다는 니체의 말을 삼키며, 잘 익은 복숭아의 갈망을 꿀꺽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바다에 가면 “갈맥아!” 외치는 아이는 바다와 거리가 먼 도시에서 ‘물꼭이’를 그려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던 모친께선 쓰기 어려운 한글을 써냈다며, 어렵지 않게 칭찬 포인트를 꼭 집어내셨습니다.
마음 가볍게, 양손 무겁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역까지 우릴 데려다준 기사님은 아이에게 사탕부터 건네줍니다. 중국과 일본 사탕 꿀꺽 삼킨 아이를 위해 드라이빙 뮤직을 동요로 교체합니다. 정의당 지지자인 그는 롯데 팬이기도 했습니다. 부산 가서 응원하고 밤새 달리는 무궁화호로 새벽 조치원역에 돌아왔다는, 타이거즈 스모킹 하던 시절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칭찬 포인트를 골고루 탑재하고 계셨습니다. 직지直指의 도시를 다시 누빌 때, 직접 지목하여 호출하고픈 귀인이셨습니다.
울산행 KTX는 쾌적했습니다. 옥의 티는 한 아재.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X맨이었습니다. 이래도 되나 싶게, 떠들어댔습니다. 딸하고 쫑알쫑알 뽀뽀 타령. 뽀뽀 못해 죽은 귀신이 붙은 것 같다고 아내는 진단하였고, 맞춤 처방은 <손 the guest>의 택시 기사 윤화평과 구마 사제 최윤 호출이라고 전 생각하였습니다.
더불어 요사이 애독하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님 칼럼 한 토막을 떠올렸습니다. ‘자신의 존재 규정을 위협할 만한 특이한 사태가 발생하면, 새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대개 위기 상황에서나 제기된다는 정체성 따지는 질문이 불쑥 솟구쳤습니다. 부성애란 무엇인가.
라이온즈의 연고지쯤에서 헤어지길 갈망하였으나, 그는 갈매기 노니는 자이언츠의 도시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몸을 휙 돌리고 꼭 집어서 뱉고 싶었던 쓴소리는 꿀꺽 삼켰습니다. 아내가 휙 던져준 <행복이 가득한 집> 9월호가 대퇴직근과 햄스트링의 굴신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대신 노익장 과시하는 멘토들의 덕담을 곱씹었습니다. 최근에 여든아홉 번째 책 <쉬어도 피곤한 사람들>을 낸 이시형 박사님은 ‘높은 이상을 품으면 그 꿈이 실현될 때까지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네이처>지 내용을 소개하셨습니다.
동물 행동학 백과사전 총괄 편집장을 맡으신 최재천 교수님은 ‘세월이 흐르고 보니 자격지심이 자격 요건이 되어 있었다’고 회고하셨습니다. 4개 국어 익히고 몸짱 화보까지 찍은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김원곤 교수님은 나이듦의 소회를 밝히셨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주위의 간섭 없이 자신이 관리하고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곽은영 시인도 읊조렸습니다. ‘이제 나는 백이십 살, 세상에 놀랄 일이 없어졌어. 그래서 모든 게 싱싱하고 예뻐 보여.’ 오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요,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라. 싫다고 베어 버리면 풀 아닌 게 없고, 좋다고 취하려 들면 모두가 꽃입니다. 그 아재도 그럭저럭 싱싱한 딸바보꽃. 휙 제초하려다 괜히 시비 붙으면 레퍼토리 뻔합니다. “근데 너 몇 살이야?”
록펠러대학의 세포생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귄터 블로벨은 일갈하였습니다. “생명의 연속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스무 살이라느니, 서른 살이라느니, 마흔 살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모두 잘못된 겁니다. 우리들의 나이는 35억 살입니다.” 바야흐로 35억 살의 가을이 여물어 갑니다. 괜한 간섭과 자격지심은 낙엽과 더불어 떨구겠습니다. 진득하게 매달려서 높은 이상, 월척 물꼭이도 꼭 낚아 올리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