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동창이 희소식 들려줍니다. 서울고등법원 판사로 일하게 됐다며 ‘위로’해달라네요. 부친의 이직으로, 고향 마산을 떠나 청주로 건너온 해가 1994년. 대성중 3학년 생활을 시작하며 성용이랑 인연을 맺었습니다.
수업 마치고 학교에 남아 함께 공부하던 친구였어요. 김일성이 돌연 사망했던 그해 여름, 한 고교의 홍보 찌라시 챙겨와선 제게 제안을 했었습니다. “같이 이 학교에 가자.”
그 학교가 제 모교가 된 공주 한일고입니다. 부모님과 교장 선생님 등 여러 반대에 부딪혀, 녀석은 고교 동문이 되진 못했습니다. 여파가 꽤 컸던 아쉬움을 토로하며, 애정 가득 담아 절 치켜세우네요. ‘그릇 큰 사람’이라니, 제가 건넬 멘트를 돌연 뺏긴 기분입니다.
저랑 같이 한일고에 진학했다면 덜 방황했을 거 같다며, ‘만사분이정萬事分已定, 부생공자망浮生空自忙’을 언급할 땐 살짝 소름이 끼쳤습니다. 제가 명리로 사연 많은 이들 상담할 때 입버릇처럼 쓰는 표현이었거든요. 명리학까지 공부했다니, 역시나 소울메이트는 떨어져 지내도 통하나 봅니다.
아무쪼록 박 판사의 행보에 기쁜 일 가득하길 염원합니다. 나약하고 억울한 이들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나라 민초들이 그의 판결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길 열망합니다.
파릇파릇한 입지의 나이에 의기투합했던 친구와 이제는 만나야겠어요. 올해가 마무리되기 전에 꼭.
불혹까지 꿋꿋하게 달려온 서로를 토닥이며, 기분 좋게 술잔을 부딪히렵니다. 그리고 외치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마음 먹은 것은 무엇이든 이루자)!

만사의 분수가 이미 정해져 있다
道通天地無形外하고
思入風雲變態中이라.
萬事分已定이어늘
浮生이 空自忙이니라.
도는 천지 무형의 밖까지 통하고
생각은 풍운의 변화 속에 드는구나.
모든 일은 분수가 이미 정해졌거늘
덧없는 인생은 부질없이 스스로 바쁘구나.
道典 5: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