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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부건 Oct 06. 2019

개념과 제멜바이스


응급실로 한 처자가 떠밀려왔습니다. 수면제를 한 움큼 삼켰더군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파 보이는 환자를 다독이고, 인턴 선생에게 오더를 내렸습니다. “저 분은 DI(Drug Intoxication, 약물 중독) 환자니까, history taking(병력 청취) 더 해서 charting 해둬요.” 


올해 8월에 이직했습니다. 청주와 울산 거쳐 대전에 안착.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꿈꾸는 장 선생이 곧장 신환에게 다가가 열정을 쏟아 이것저것 묻습니다. 기자가 취재하듯 여러 정보를 긁어모은 인턴 선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제게 다가옵니다.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네요. “과장님, DI 환자인데 DM(Diabetes Mellitus, 당뇨병)을 앓았던 적이 없었답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직장인 뫼비우스 띠에 갇히지 않도록 인턴 질문에 친절히 응대.

설명에 앞서 엔돌핀 뿜으며 박장대소하였습니다. 의사 국가고시를 갓 통과한 장 선생의 CPU(Central Processing Unit)에는 DI가 ‘약물 중독’으로 입력되어 있지 않았던 겁니다. 그에게 DI는 요붕증(Diabetes Insipidus, 항이뇨 호르몬인 바소프레신이 뇌하수체에서 제대로 생성되지 않거나, 신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다량의 희석 소변이 생성되고 과도한 갈증이 동반되는 질환)일 뿐이었습니다. 증상이 비슷하나 기전이 다르기에 당뇨병과 감별이 필요한 DI(요붕증)에 대해 다시 정리해주고, 응급실에서 자주 마주하는 DI(약물 중독)에 대해 새로이 개념을 정립해주었습니다.


고쿠라 성 옆 리버워크 기타큐슈 앞의 인어공주도 필라테스 중.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뀐 직후, 아내와 더불어 떠밀리듯 필라테스를 시작했습니다. 소싯적엔 병약했으나 다이빙, 스키 등 여러 운동을 섭렵하며 강건해진 요제프 필라테스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램커스터 포로수용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억류된 수감자들을 위해 고안한 운동이 필라테스의 원형입니다(병원 침대에 스프링을 장착해 재활 돕던 도구가 필라테스 기구인 ‘캐딜락’으로 발전하죠).


캐딜락 관상은 이러합니다. 어마무시하죠.

동양의 요가와 선(禪), 고대 그리스 및 로마에서 행해지던 양생법 등을 접목하여 만든 운동을 할 때마다 의아했던 게 있습니다. 레슨 이끄는 강사께서 매번 ‘귀엽게 멀게’라는 구령을 붙이시더군요. 굳은 근육 비틀고 쥐어짜며 비명과 곡소리 뽑아내게 하는 운동을 어떻게 ‘귀엽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열번 째 수업을 마칠 즈음,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여쭈었습니다. 제 진지한 질문에 박장대소하며 선생님이 의문을 풀어주시더군요. “회원님, 귀엽게 아니고요. ‘귀 어깨 멀게’에요.”


다옴 필라테스에서 한 시간 동안 땀 빼면, 자연스레 유체이탈.

그렇습니다. 문제는 ‘개념’입니다. 각자의 머리에 깃든 개념의 틀로 환자를 헤아리고, 구령을 해석합니다. 유홍준 선생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머리말에 남겨 유명해진 말을 독백처럼 되뇝니다.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기에, 새로운 앎을 열어주는 선각자의 공덕은 가히 지대합니다. 의학과 의료가 지금의 모습으로 가다듬어지기까지 숱한 위인들이 여러모로 공헌을 하셨는데요. 전 제멜바이스의 발견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여깁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로쿠스 병원 앞 제멜바이스 동상.

제멜바이스(Ignaz Philip Semmelweis, 1818~1865)는 헝가리 출신으로, 빈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산부인과 의사가 됩니다. 1846년 오스트리아 빈 종합병원에서 일하던 그는 집에서보다 병원에서 분만할 때 산욕열(출산 후 감염으로 고열, 패혈증을 일으키는 질환) 발생률이 높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당시 병원에서 출산한 산모 중 약 25~30%가 산욕열로 목숨을 잃을 정도였어요. 이렇게 사망율이 높은데도 의학계는 그 원인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제멜바이스가 일하던 병원에는 2개의 분만 병동이 있었는데, 제1병동에선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근무하고, 제2병동에선 조산원들이 일했습니다. 제2병동보다 시설이나 인력이 월등히 좋았지만, 매번 제1병동 산모의 사망률이 제2병동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저주받은 병동이라는 소문까지 돌아서 제1병동에서 아이를 낳느니 길거리에서 낳는 게 낫다고 사람들이 조롱할 정도였어요.


사망률 격차의 이유를 조사하던 그는 1847년 초에 매우 중요한 단서를 포착합니다. 부검하다 상처 입어 패혈증으로 사망한 그의 동료 야코프 콜레츠카의 부검 결과가 산욕열 사망자와 유사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그는 시체에서 나온 독성 물질이 임산부에게 전염되어 산욕열을 일으킨다고 추리했습니다. 분만실에 들어가기 전에 종종 부검을 실시하던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검사와 출산 중에 자신도 모르게 제1병동 산모에게 전염을 시킨 것이죠. 조산원들은 부검을 하지 않았기에 제2병동의 사망률이 더 낮았던 겁니다.



의사의 손에 묻은 ‘시체 입자(cadaverous particles)’ 때문에 산모들이 사망했다는 걸 자각한 제멜바이스는 부검 후 산모 진료 전에 염화칼슘액으로 손을 소독하도록 독려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1병동 사망률이 90% 감소하여 2병동과 비슷한 수준이 됩니다.


울산도서관에서 피사의 사탑 세우는 조안. 다수의 삐딱한 시선 바로잡기,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산욕열이 의사들의 청결하지 못한 손에서 기인한다는 제멜바이스의 주장은 다른 의사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킵니다. 그의 이론을 수용하면 의사들이 산모들 죽인 것을 인정하는 셈이죠. 피가 의사의 손에 묻는 것을 훈장처럼 여기는 풍토 속에서 그는 결국 빈의 병원에서 해고됩니다.


자신을 믿어주는 진짜 친구가 있었다면 그의 비극도 없었겠지요.

고향인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돌아온 그는 작은 산부인과를 운영하며 감염 위험성을 경고하는 편지를 유럽 전역의 병원에 보내고, 그에 관한 논문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경멸과 조롱 뿐. 동시대 의사들은 물론 부인에게조차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은 그는 우울증과 편집증에 시달리다 1865년에 정신병원으로 보내집니다. 거기에 수용된 지 14일 만에 직원에게 구타 당하여 숨을 거두죠.



감염을 막기 위해 손을 씻어야 한다고 세계 최초로 주장한 의사, 제멜바이스. 1880년대에 파스퇴르가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증명하면서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의사는 복권됩니다. 의학 처치에서 엄격한 무균 예방법을 최초로 도입한 그의 발견은 의학사의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가장 오래된 의대는 그를 기리며 1969년에 제멜바이스 의과대학으로 개명합니다. 그의 논문, 『산욕열의 원인, 개념과 예방 The etiology, concept, and prophylaxis of childbed fever』은 2013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됩니다.


제멜바이스의 논문. 역사가 기억하는 기록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상식이 한때는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전 인류의 CPU에 새로운 개념을 탑재하는 여정은 만만한 일이 결코 아니죠. 선각자의 지난한 희생이 필연적으로 선행됩니다. 의료를 비롯해 각 분야 진보의 걸림돌인 묵은 관념과 맞설 수 있는 용기가 필수입니다.


서울역에 걸린 질병관리본부의 공익광고.

환자 돌보고 돌아설 때마다 제멜바이스 떠올리며 손을 빡빡 씻습니다. 때로는 귀까지 씻어봅니다. 통념과 다른 참신한 주장을 넉넉하게 빨아들일 수 있는, 싱그러운 고막을 고대하며.



자고로 선지선각(先知先覺)은
훼방을 많이 받나니
천하사를 하는 데
비방과 조소를 많이 받으라.

남의 비방과 조소를
잘 이기어 받으면
내 세상에 복 탈 것이 크리라.

道典 8:33:3~4

10월 첫 진료차 불금 응급실에 들어섰습니다. 평소 6단위 인슐린 맞는다는 어르신, 어쩌다 60단위 주입하시고는 눈앞이 아득하시다며 도움을 청하시네요. 급변할 혈당 수치 밤새 지켜볼 각오하고 스테이션으로 돌아오니 간호사가 우편물을 건네줍니다.


속리산 소나무 숲과 맥문동 꽃이 표지에 두둥.

봉투 뜯으니, 충청북도 변호사 회보 11호. 공주 한일고 선배이신 장 변호사님이 연락을 주셔서 칼럼 하나 끼적였더랬죠. 오랜만에 종이에 박힌 제 글과 재회합니다. 회보 편집 후기에 박힌 한 변호사님 말씀에 오롯이 공감합니다. “기고를 수락하는 순간 삶의 질이 떨어진다.”


따로 또 같이. 야간 근무는 2급 발암물질입니다.

가뜩이나 워커밸(근로자와 손님 사이의 균형을 찾자는 ‘worker-customer balance’의 줄임말로,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9>에 처음 등장한 용어입니다. 워라밸이 직장인의 저녁 있는 삶을 추구했다면 워커밸은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감정노동 보호를 내세웁니다.) 낮은 직장에서 일하며 문장을 쥐어짜는 일은 역시나 삶의 질을 제법 위협하더군요.



그래도 기어이, 마감일에 맞춰 투고했습니다. 수시로 ‘귀 어깨 멀게’ 몸 비틀며 써낸 글을 다시 훑으니 모락모락 다 된 밥에 숟가락 꽂는 기분이네요. 삶의 질이 다소 올라갑니다.


남을 이롭게 하는 ‘상생’이 일생의 모토입니다.

밤새 지켜본, 인슐린 오남용 할아버지 혈당도 안정적으로 올라섰네요. 입원을 권유했지만, 일이 있어 굳이 퇴원을 하셔야겠답니다.



동녘이 밝아옵니다. 저도 굳이 퇴근을 해야겠습니다. 몇 시간 뒤 다시 출근이지만. 일단 손부터 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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