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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일우 Mar 22. 2024

용용 죽겠지


용용 죽겠지


안녕하세요. 오공입니다. 오늘은 25번째 유전자  5 라인의 날입니다. 대지의 절기는 경칩을 지나 춘분으로 접어들었습니다. 태양의 중심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어 음과 양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춘분으로부터 낮이 밤보다 길어집니다. 세상은 나날이 완연한 봄으로 나아가는데요. 제가 몸담고 있는 의료계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낮보다 밤이 길어지고 있어요.


막무가내 정부의 갑작스런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들로 인해 저 또한 인턴 없이 응급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대학병원을 대신하여, 밀려드는 응급환자와 중환자들을 줄기차게 감당하고 있네요. 박봉을 무릅쓰고 격무를 감내하며 필수의료 현장을 사수하다 사직한 응급의학과 후배 전공의들을 위해 의국의 전문의 선배들이 모금 활동도 하였습니다.


협상은 없고 협박만 있는 정부와 헌신 끝에 헌신짝 된 의료계의 강 대 강 대결로 인해, 삶에서 가장 큰 제약을 생존의 근간인 보건복지 영역에서 국민들이 경험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느낌에 기여하는 특정한 신념이나 두려움은 무엇일까요? 여러 상념들 중 하나는 아마도 ‘의료는 공공재’라는 신념일 겁니다. 물론 저를 비롯한 대다수의 의사들이 그런 신념과 소명의식을 품고, 열악한 환경에서 기꺼이 고생하고 있습니다만,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실상이 과연 그럴까요?


의료나 의사를 공공재라 부를 수 있으려면,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들을 처음부터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교육시켜서 사회에 배출해야 합니다. 더불어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공공의료기관이어서 전 국민이 공공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하죠. 영국을 포함한 몇몇 국가가 이에 해당하는데요. 그런 영국의 전문의들과 전공의들조차도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과 부당한 처우를 일일이 지적하며 수시로 집단행동을 합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존권과 건강권을 굳건히 사수하죠.


국민의 건강권을 묵묵히 지켜내는 의사들을 공공재 운운하며 공공의 적으로 몰아세우는 현 정부는 잘못된 특정 신념으로 국민들을 오도하고, 이에 편승하는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들로 호도하여 국민들의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25번째 그림자 ‘수축’이 사회 전반에 드리워져 있네요. 25번 진키의 프로그래밍 파트너인 46번 진키의 그림자 ‘심각함’도 그 밀도를 나날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한국 의료의 고질적 병폐인 필수의료 기피현상을 해소하고자 저를 비롯한 현장 전문가들이 줄기차게 정부에 요청해왔던 것은, ‘비정상적인 수가 체계의 개선’이었습니다. 의료 행위의 보상인 수가는 6000여 개에 달하는 의료 행위의 가치를 업무량, 진료비용, 위험도에 따라 상대적으로 구분한 ‘상대가치점수’에 병·의원 등 기관 특성마다 다른 ‘환산지수’를 곱해서 산출합니다. 여기에 의료 행위마다 보상이 이뤄지는 ‘행위별 수가제’가 합쳐져 전체 보상이 결정되죠.


전체 진료 영역 가운데 수술 분야 수가는 원가의 81%, 처치는 83%에 그칩니다. 반면 혈액검사 등 검체 검사의 원가 보전율은 135%, MRI 촬영 등 영상 검사는 117%에 달해요. 이런 수가 체계는 건강보험제도가 정착된 2001년 이후 세 번의 개편 작업을 거치면서도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위중한 환자의 생명을 건지는 중차대한 수술이 MRI 촬영보다 저렴한 것이 현재의 수가 체계입니다. 생사를 좌우하는 수술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시스템이 현행 의료의 실상이에요. 의료 행위를 늘려야 수익을 낼 수 있다 보니, 수술 한 번에 10시간씩 걸리는 필수의료과가 기피 대상이 되는 건 당연지사죠.


예컨대, 한 병원이 필수의료 담당 의사 3명을 데리고 있습니다. 이 의사들은 꼭 필요하지만, 진료가 거듭될수록 병원엔 손해만 날 뿐이에요. 진료할 때 비용 10이 드는데, 나라에선 가격을 8로 규정했거든요. 경영난으로 병원은 1명의 의사로 운영을 이어갑니다. 남은 의사는 3인분의 업무를 혼자서 해내죠. 기존 병원에서 잘린 의사들은 전공을 살려서는 취직을 할 수 없어요.


중증, 응급, 소아 등의 필수과에 의사가 없다는 것은, 수련 받을 의사가 없는 게 아니라 수련 받은 의사가 온전히 활약할 자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수가를 올려달라는 말은, 능력이 충분함에도 적자구조 때문에 병원을 떠나야 했던 전문의들이 떠나지 않아도 되게끔 해달라는 뜻입니다. 지금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정사원도 짤리는 판에 취준생만 늘리는 격입니다.


지난해 10월 11일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후 국면전환 방책의 하나로 의대 증원이 검토됐다는 것은 여당에서도 부인하지 않는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작년 초부터 의료계와 협의해온 보건복지부의 증원 규모는 500명 선이었어요. 증원 규모 발표를 미루던 정부는 설 연휴 직전에 올해 입시부터 2000명을 증원하겠다는 깜짝 발표를 했습니다. 이후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훌쩍 뛰고, 의대 증원 문제가 모든 사안을 빨아들였죠. 골치 아픈 경제, 민생 이슈 모두가 증발했으니 선거 국면에서 이만한 효자가 없을 겁니다.


19년 동안 묶여 있던 의대 정원을 단번에 폭발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발표하면서도, 정부는 상식적인 질문과 우려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습니다. 왜 지금, 일거에 진행해야 하나, 2000명이라는 숫자의 근거는 뭔가, 의대 정원을 증원하면 ‘지역·필수의료 파행’이라는 현재의 고질적 의료 문제가 풀리는가 등등의 질문엔 마이동풍 묵묵부답입니다. 로스쿨 증원도 단계적으로 추진됐었죠. 이웃의 일본은 약 15년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의대를 증원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작용이 거의 없었는데요. 현재는 의대 정원을 다시 감축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의료 정책을 어떻게 세워놨길래 이따위로 합니까? 제도는 제대로 만들 생각을 안 하고, 의사와 간호사의 희생만 요구하고, 이래가지고 도대체 이 코로나에 제대로 대응이 되겠습니까?” 2022년 3월, 당시 대선 후보였던 윤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이렇게 호통을 치며 올바른 의료 정책을 추진하겠노라 호언장담하던 분이 이끄는 정부가 3월 20일 춘분에 충분한 협의 없이 2025년도 의대 정원을 공식 발표하면서 2000명 의대 증원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의대 교육은 실습 위주의 도제식 교육인 바, 근거 없는 의대 정원 확대는 의대 교육 부실화 및 의료의 질 저하를 필연적으로 야기합니다. OECD 국가들을 30여 년 동안 면밀히 분석한 결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1% 증가하면, 1인당 의료비가 22%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의사 수가 늘면 총 의료비 및 건강보험료 상승으로 국민들 부담이 늘어납니다.


그렇게 의사 수가 늘어나도 현행 수가 시스템 하에선 필수의료 의사 수가 절대 늘지 않습니다. 이렇듯 필수의료 붕괴는 가까운 미래가 아닌 당장의 현실이에요. 정책의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그 정책으로 인하여 한 나라의 의료 시스템이 붕괴된다면 아마추어 정부, 돌팔이 정부일 뿐입니다. 국민 생명을 담보로 그렇게 무리한 정책을 폭압적으로 추진하면 안 됩니다.


정부와 의료계의 진솔한 소통이 일절 허용, 수용, 포용되지 않는 ‘용용 죽겠지시국에 저는 라오스 의료봉사도 다녀왔습니다. 이국종 교수의 스승이었던  강릉아산병원 원장님과 대한민국 최초 시민 발의 의료원인 성남시의료원 원장님  의료계 대선배님들과 함께 라오스 방비엥의 군립병원에서 하루에 500 넘는 환자들을 줄기차게 진료했더랬죠.



비엔티안 주지사와 방비엥 시장, 비엔티안 보건국장 등이 병원에 찾아와서 한국의 의료봉사와 물품지원에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더군요. 무척 고된 일정이었지만, 25번째 시디인 universal love, 보편적 사랑을 구현하는 아주 뿌듯한 경험이었습니다. 더불어 세계  어느 곳과 견주어도 위풍당당한 K-의료의 위상을 재확인한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1960년대의 한국에 머물러 있는 라오스 의료 현실에 비하면, 우리의 의료 시스템은 가히 ‘천상계입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의사를 가장 편하게 빨리 볼 수 있는 나라라는 걸 아시나요?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어려운 수술을 바르게, 빠르게 받을 수 있는 나라라는 것 또한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의사 외래 진료 횟수 세계 1위, 병원 재원 일수 세계 2위, 기대 수명 세계 3위 등의 성적으로 K-의료가 공인받고 있어요. 세계 상위권의 의료에도 국민 의료비는 OECD 평균 이하인 우리나라는 명실상부 의료 선진국입니다. 이 명성을 이어갈 수 있는 현명한 의료 정책이 부디 나와주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2017년 12월 10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BMW 댈러스 마라톤 대회가 열렸습니다. 여성부 1위로 달리고 있던 뉴욕의 정신과 의사 첸들러 셀프가 결승선을 고작 183m 남기고 비틀거리기 시작했어요. 다리가 완전히 풀린 첸들러 셀프는 더 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립니다.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던 2위 주자에겐 다시 없는 우승의 기회였는데요. 2위 주자인 17세 고교생 아리아나 루터먼은 첸들러 셀프를 부축하여 함께 뛰기 시작합니다. 의식을 잃을 것 같은 첸들러 셀프에게 그녀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결승선이 바로 저기 눈앞에 있어요"라고 끊임없이 응원하였죠. 그리고 결승선 앞에서 그녀의 등을 밀어주어 우승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지친 국민들을 부축하여 1위 주자로 밀어주는 아리아나 루터먼이, 제가 투신한 의료계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바입니다. 그런 의료계가 지금 첸들러 셀프처럼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국민들께서 이젠 응원해주실 차례에요.


공교롭게도 25.5 휴먼 디자인 키노트가 ‘회복이네요. 이번 사태로 극명하게 드러난 의료 정책의 고질적 병폐가 온전히 회복되길 염원합니다. 정부와 의료계가 지난날은  잊어버리고,  잡고 함께 국민들을 위해 뛰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필수의료에 투신한 낭만닥터들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허용, 수용, 포용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마침내 모든 것이 수용되고, 보편적 사랑의 장미가 피어나는 영구적 도약이  이루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진주가 만들어지도록 촉발하는  내부의 자극으로 작금의  모든 고통을 수용합니다. 지금 여기에 머물게 하는 모든 고통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목적을 새삼 자각하며,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초심 그대로 소신껏 달려갑니다.



피끓는  절규를 끝까지 경청해주신 여러분, 치앙마이의 날씨만큼 뜨겁게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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