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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Mar 21. 2020

충격이 일상이 되는 시대, 존재목적에 대한 철학이 필요

[나와 우주의 미스터리]02. 광대한 글로벌 프로그램 ②

(이전 글:  광대한 글로벌 프로그램 ① - 모든 것의 궁극의 이유, 우리가 살고 있는 매트릭스)


■ 씨발, 자유의지는 없다


우리는 광활한 프로그램의 어느 작은 한 지점에서 태어나고 어느 한 지점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 거대한 프로그램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란 존재는 마치 먼지와도 같은 그 창백한 푸른 점 지구처럼 그 어떤 가중치도 그 어떤 중요성도 없다.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별다른 감정 없이 프로그램을 바라봤다. '이런 게 있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갈수록  숨이 턱 막혀 멀미가 날 것 같았다.


프로그램은 마리오네트 인형을 이리저리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끈처럼 우리의 배후에서 인류의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제로 배 속이 울렁거렸다. '씨발', 자유의지는 정말 그 어디에도 없다. 


■ 프로그램은 현 인류를 위한 문을 닫는다


앞으로는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인간에게 우호적이라 여길만한 프로그램의 계획도 여간해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내가 아직 이 계획의 긍정적인 면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청사진은 시스템(사회안전망) 붕괴 , 출산율 감소, 불임, 온난화, 자연재해, 우울증, 자폐증, 선별적 도태, 각자도생 등이다. 이 모든 것은 '충격'이라는 단어로 일축된다.


비단 휴먼 디자인이 아니어도  스스로 진화하는 '인공지능', 신이 되려는 인간 '호모 데우스' 등  그 어떤 세대도 경험하지 못한 듣기만 해도 소름 돋는  미래에 대한 급진적 시나리오들이 이미 나온 지 오래다.


휴먼 디자인은  아예 대놓고 이 보다 더 쇼킹한 미래를 이야기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 그리고 새로운 종 '레이브'의 출현이다. 즉  새로운 종 '레이브'의 출현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끝을 말하는 것이다. 듣기만 해도 충격적이지 않은가.


이러한 미래의 청사진을 보니 어쨌든 이 말들을 듣고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아무도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것 같다.


프로그램은 그동안 우리 인간에게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을 제공했다. 그리고 프로그램은 180도 돌변해서  2027년을 기점으로 현 인류를 위한 문을 닫는다. 그 문이 닫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휴먼 디자인은 이토록 찬란한 인류의  문명이 가능했던 이유가 지난 412년간 지속돼 온 계획의 크로스(cross of planning,1615~2026)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휴먼 디자인은 앞으로 다가올  쇼킹한 미래 역시 2027년부터 새롭게 시작할 사이클인 '잠자는 불사조 크로스(cross of sleeping phoneix,2027~2438)'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충격적인 계획은 이미 진행 중이다. 엄정한 프로그램은 우리가 단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어둡고 낯선 길을 이미 계획해 놓고 있다.


차차리 이 모든 것이 희대의 사기극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뭐 이 정도 사기는 일종의 해프닝이라고 여기면 그만이다. 그래서 사기극일 가능성을 품으며 의심의 눈초리를 맘껏 날려본다.


그러나 그 누구도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명확한 방향, 대안,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갈 길을 잃은 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그저 한쪽 귀로 흘려들을 얘기는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예사롭지 않은 조짐들을 소름 끼칠 정도록 정확하고 디테일하게 설명해주고 있으니  무시하고 싶어도 좀처럼 무시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인간을 위한 문이 닫히는 그런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 잘 알지 못한다. 그 누구도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휴먼 디자인에서 어둠이 온다느니,  충격이 일상이 되는 시대가 온다느니, 적응하지 못하는 자는 선별적으로 도태된다니 하는 무시무시한 말을 해도 그 말을 몸으로 제대로 실감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충격이 일상화되는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정말로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어떻게 대비하라는 답도 친절하게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도 않는다.


■ 존재의 목적에 대한 철학을 세우는 일


이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변화무쌍한 미래에 대한 다양한 우려, 경각심, 고민이 난무하는 지금 같은 때에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새로운 철학을 세우는 일이 절실해 보인다.


근본적으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  즉 '존재의 목적'에 대한 철학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첨단 과학문명 덕분에 인류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지구에서 두 발을 떼서 저 먼 우주로 날아간 인간이 드넓은 우주 한가운데서 창백한 푸른 점 지구를 바라봤을 때를 생각해보자.


지구 밖을 나가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작은 푸른 점 하나를 바라본 우리들은 작디작은 인간의 존재를 느끼며 뭐라 말을 이을 수 없는 먹먹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거대하고 광활한 우주 속 어느 한 점에서 작은 숨을 내쉬고 있는 작디작은 생명체로써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생각할수록 아이러니한 것은 땅과 바다와 하늘과 우주를 누비며 문명의 최정점을 일군 그 위대한 인간이 현재에 이르러서야 궁극적으로 배우게 된 것은, 이기심, 교만, 오만이 아닌 바로, 연민, 사랑, 겸손이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 지구를 보며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서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 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이,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 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칼 세이건은 우리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과거로부터 배우고,
미래를 반드시 염두에 두면서 이 희귀하고도 귀중한 종으로서,
이 막막한 우주에서 우리는 '사랑'으로 그리고 우리의 빛나는 '지성'으로
이 순간 진지하게 '존재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모두들 우리가 만든 초고층빌딩, 초고속 통신,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자동차, 인공지능로봇 등을 보고 위대하다 말하지만,  문명의 진정한 위대함은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준 것에 있지 않을까.


정작 문명이 우리에게 준 최고의 것은 바로, 인간의 '존재 목적'을 깨닫게 해 준 것에 있지 않을까.


칼 세이건이 말한 '사랑' '지성' '존재적 책임'이라는 말이 오늘따라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나와 당신의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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