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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Jun 05. 2020

몸이 가는 길이 삶이다  

[나와 우주의 미스터리]16. 마인드의 착각 ②

(이전글 : 마인드의 착각 ① - 뇌의 거짓말)


■ 9 센터 인간에게 마인드는 삶이 펼쳐지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7 센터에서 변이 된 지금의 우리 존재에게  쓸모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과거 7 센터 인간의 삶이 휴먼 디자인 바디그래프(Bodygraph) 목센터 상단에 위치한 마인드(mind)를 통해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지금의 9 센터 인간에게 있어 삶(life) 은 '목센터 이하'에서 이루어진다. 


즉 마인드(mind)라고 일컫는 머리(head) 센터와 아즈나(ajna) 센터는 9 센터 인간에게  더 이상 삶이 펼쳐지는 곳이 아니다.


■ 마인드의 태생적 한계  


마인드는 행동으로 옮겨서 현실화시킬 수 있는 동력(motor) 센터와 연결되지 않고, 마인드의 궁극적 종착역은 소통하고 표현하는 목(throat) 센터다. 즉 마인드의 역할은 어떤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현실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언어로 소통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제한되어 있다. 


마인드는 본래 우리 삶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알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마인드는 본래부터 삶에서 진정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평가할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마인드는 '이것' 또는 '저것'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이원성의 선택의 맥락에서 모든 게 고착되어 있어서 좋은 점, 나쁜 점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해도 늘 '그때 이랬어야 했는데'라는 후회와 재평가 과정을 결코 끝낼 수 없다. 


마인드는 본래 제한적으로 정보를 습득하게 되어 있고, 마인드에서 기억, 재생, 저장되는 것은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마인드는 세상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결코 진실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마인드의 태생적  한계다.


■ 몸이 가는 길이 삶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9 센터 인간이 삶의 진실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7 센터 시대의 잔재인 마인드 게임이 지금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겸허히 수용하는 것이다. 둘째, 그동안 전적으로 의지했던 마인드의 자리를 각자의 내부 권위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감정의 힘 있는 명료함에게, 천골의 만족스러운 반응에게, 비장의 날카로운 직관에게, 에고의 솟아나는 의지력에게, G센터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만족감에게 말이다.  


마인드의 본성에 대한 무지로부터, 여전히 마인드가 나의 삶의 진실을 알려줄 것이라는 착각으로부터, 뇌가 말하는 거짓말이 여전히 거짓말인 줄 알아채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부터 시작된 저항과 고통은, 이원성의 맥락에 고착된 마인드의 한계를 수용하지 않고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다. 


휴먼 디자인은  이러한 마인드의 한계와 착각을 수용해서, 이 삶의 모든 것을 정신적으로 이해하려 하고, 모든 것이 정신적으로 이치에 맞아야 하고, 세상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이 모든 정신적 근심을 소멸할 수 있을 때,  정신적 자유를 얻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그때,  삶이란 몸이 의도되는 대로 가는 길이었음을, 몸이 가는 길이 삶이었음을(the body is the life), 선택할 수 없음이 신의 은총이었음을(choiceless is grace) 우리가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 글 : 마인드의 착각 ③ - 미덥지 않은 날개를 믿고 비상하는 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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