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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Sep 07. 2020

죽어야 사는 사람들

[처음 보는 메커니즘]08. 개인(individual) ②

(이전 글 : 개인(individual) ① 너무 평범해서 불행한 개인)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아주 오래 전 알고 지내던 실력도 직분도 평판도 훌륭했던 선배 한 분이 늦깎이 나이에 홀연히 모든 걸 버리고 배낭여행을 떠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책 없다' '비현실적이다' '무책임하다'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왜인지 난 선배의 말 못 할 심정을 알 것 같았고, 그가  짬짬이 블로그에 올리는 험블 한 여행사진과 건조한 글을 보는 걸 즐겼다. 내일은 어디서 잘지,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 다음엔 어디로 갈지, 다시 돌아가선 어떤 일을 할지, 막연하고 불안하고 불확실한 상황이었지만, 선배의 글에는 남들이 가치 있다 여긴 울타리 밖으로 나와 자신만의 삶의 목적을 찾아 떠난 그 여정 자체만으로도, 이미 '행복'하고 '의미'있다는 그런 단어들로 빼곡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순간 러시아 문학의 거장 레프 톨스토이가 던진 질문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 죽어야 사는 사람들  

'이것은 내 삶에 가치가 있을까’ ‘죽기 전까지 내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면 내 삶은 아무런 의미기 없을 거야'


오직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나만의 '목적'을 찾기 위해 홀로, 고독하고 단호한 투쟁을 하는 사람들. 삶이 너무 가치가 없어서 혹은 가치 있음을 느끼기 위해 화염 속에 자신을 불살를 수도 있는 사람들. 그렇게 불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가 죽어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


설령 이 투쟁의 끝이 무엇일지 모른 채 힘들기만 하더라도 '이 삶은 살만해', '인간으로 사는 건 정말 멋진 거지'라고 말할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도 꿀맛 같은 '성취'를 맛볼 수 있는 사람들.


아마도 선배에게는 지금보다 몇 십배 높은 연봉, 고급 차, 막강한 권력의 자리를 얻는다 하더라도, 모두에게 대단한 성취라 여겨지는 모든 성취가 그에게는 떫디떫은 실패로 느껴질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역시 그렇다.


이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유한함을 알고 있다. 이렇게 삶의 끝인 '죽음'을 인식하기에 그 한계 내에서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세상과 높은 담을 두르고 삶과 죽음을 두고 도박을 하는 위대한 게임 선수(gambler)들.


죽어야 사는 사람들.


그들은 '개인(individual)’이다.    


(다음 글 : 개인(individual) ③ 이 세상의 아웃사이더, 개인이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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