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휴먼 디자인]19. 지붕 위 6번 라인으로 산다는 것
‘굳이 왜’. ‘난 관여하고 싶지 않다’. ‘저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아무 의미도 없는데’ ‘도대체 할만한 가치가 있는 거야’ ‘안 봐도 뻔해’ 내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이다. 내가 종종 쓰는 단어 중에는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 ‘이 세상 사람들’ 도 있다.
난 헥사그램의 6개 라인 중에 가장 상층부에 위치하고 있는 6번 라인이 겪게 되는 3단계 프로세스 중 2단계(약 30~50세)에 해당하는, 소위 '지붕 위'시기를 보내고 있다.'지붕 위'라는 표현이 정말 재밌다. 휴먼 디자인에 나오는 여러 다양한 개념 중에 지금의 나를 가장 잘 비유한 말이라 여겨져 가끔씩은 피씩 피씩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1층 집, 2층 집도 아닌, 옥탑방도 아닌, 지붕 위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이 세상과 꽤나 동떨어져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지붕 위 기간의 상당 시간을 허무주의, 냉소주의, 냉담함, 오만함, 거만함으로 보내고 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내뱉는 말들이 객관성을 빙자해서 얼마나 얼음장처럼 차가운 지도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인생 초기 30년 동안의 온갖 실패, 상처들이 지금의 날 이렇게 이끈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지금의 내 행동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있음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이런 냉소적인 마음으로 지붕 위 시기를 보내는 동안 이 물질세계의 한 복판에서 살아가는 일이 녹록지 않게 느껴질 때가 많이 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기를 쓰며 매달리는 많은 것들이 내 관점에서는 그저 시시하게 느껴지고 불필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의식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1~5번 라인의 과정을 이미 겪었기에 또다시 똑같은 과정을 다시 겪을 필요 또는 흥미를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우스운 건 내 머릿속엔 늘 전혀 손에 잡히지 않을 더 큰 무언가를 기대하며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그 무엇인가가 오리라는 희망으로 때로는 혼자 설레기도, 때로는 깊은 우울감, 공허함,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난 도대체 무얼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일까?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그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니. 누군가가 이런 날 본다면 이 현실 세계에 살아가기 부적절한 사람으로, 그저 바보 같은 사람으로, 헛된 꿈만 꾸는 몽상가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발은 여전히 이 땅 위에 있다. 그러나 난 이 땅 위에 서서 진정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인간을 위한, 우리 인류를 위한 어떤 것을 말이다.
난 이렇게 바보같이 살고 있다. 난 지붕 위에 있는 바보다.
좀처럼 일상에서의 만족감을 얻기 쉽지 않은 지붕 위 바보인 난, 64개의 6번 라인중 9.6의 교훈을 가장 좋아한다. 9.6은 감사다.
수천 마일의 여정은 첫 걸음에서 시작된다. 여정의 끝까지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로 길에 나설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떤 명백한 패턴이 있는 결론으로 이끌지 않더라도 오늘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그 과정 자체로 이미 가치 있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감사. 그것은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정말 귀한 가치다. 근데 왜 난 그것을 항상 까맣게 잊어버리는 걸까?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