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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Oct 02. 2020

이원적 생각 너머엔

[내가 만난 휴먼 디자인]18. 우리가 사는 이원적 세상 

■ 이원적 세상, 이원적 생각     


우리는 빛과 어둠, 음과 양, 남과 여가 공존하는 이원적 우주(binary universe)에 살고 있다. 그리고 (모두는  아닐지라도)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 또한 이원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이것은 착하고 저것은 나쁘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다. 이런 말을 쓴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 자체가  옳고 그르다, 혹은 착하다 나쁘다와 같이 이원적 구조로 되어있다는 반증이다. 나 또한 옳고 그른 것, 착하고 나쁜 것이라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하지만 중립적인 메커니즘 자체를 말하는 휴먼 디자인을 통해서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잣대를 지닌 우리의 뿌리 깊은 관념들은 가차 없이 난도질된다. 대표적으로 휴먼 디자인 주역(Rave I'ching)의 하강()이 그렇다. 


휴먼 디자인 주역은 상승(▲)과 하강()의 이원적 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상승과 하강이 모두 이 세상의 구성요소로서  각자가 제 역할이 있다는 뜻이다. 상승(▲)과  하강()은 그냥 역할 그 자체다. 그 어떤 것도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은 없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하강()이 갖고 있는 에너지는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고려할 때 그리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처음엔 하강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보며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거나, 내 차트에 존재하는 그런 부정적인 에너지를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필연적으로 생긴다.


이렇게 중립적인 메커니즘 자체와 일반적인 우리의 상식 간의  커다란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 옮고 그름의 절대적 기준은 있는가 

        


먼저 아주 근본적으로 옳고 그름이란 것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란 것이 과연 있을지 생각해보자.  


데이비드 홉킨스의 책 「의식혁명」에 제시된 의식 수준에 따르면 남루한 옷을 입은 노숙자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기 다르다고 한다. 죄의식(의식 수준 30) 수준에서는 그의 상황을  비난하고, 절망(50) 수준에서는 그를 자포자기 상태로 보고, 두려움(100) 수준에서는 그를 위협적인 존재로 본다. 한편 용기(200) 수준에서는 그에게 필요한 일거리와 거처를 생각하게 되고, 중용(250)의 수준에서는 그를 흥미롭게 보며, 자발성(310) 수준에서는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줄 생각을 한다. 심지어 그보다 높은 수준에서는 노숙자를 흥미로운 존재일 뿐 아니라 물질에 대한 무관심에서 오는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보게 된다. 


이 해석을 보고 있으면  세상만사에는 옳고 그른 것이 있고 모든 것은 옳아야 하고 옳지 못한 것은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 머리를 한대 세차게 얻어맞은 느낌이 든다. 동시에 한편으로 왜인지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도 든다. 


우리는 이 세상이 고정된 어떤 것이라고 여기지만  정작 고정되어 있던 것은 우리의 의식,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고정된 어떤 것이 아니라 각자 저마다의 시선으로 해석되고 주관적으로 체험되는 세상인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강으로부터 느끼는 부정적 에너지는 정말 그것이 부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의식 수준이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없도록 가로막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 이원적 생각 너머엔


이런 시선으로 보면 하강(▽)도, 그 누구도 부정적이거나 비난받아 마땅한 어떤 것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국은 좋은 게 꼭 좋은 것만도 아니고, 나쁜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려 하는 듯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우리가 좋고 선하고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것뿐 아니라, 더럽고 추악하고 나쁘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도 메커니즘적으로 제각기 자신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사기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기꺼이 부패를 저지르는 사람들. 기꺼이 폭력을 휘두르고 통제하려는 사람들, 자신에게 기회가 없을 때 비열하게 등 돌리는 사람들.  


이 모든 것으로부터 궁극적으로 마지막에 남는 유일한 것은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어떤 '교훈' 같은 것이겠지.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얻을 수 있는 그것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이나 '지혜'같은 것이겠지. 


이원적 생각 너머엔 아마도 그런 것들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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