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의 합법적 자해공갈단

왜 법을 어긴 자가 피해자가 되고, 지킨 자는 죄인이 되는가

나는 틈날 때마다 일부러 교통사고 블랙박스 채널을 찾아본다.

단순히 자극적인 영상을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나만의 '데이터베이스 업데이트' 과정이다.


운전은 끊임없이 변수를 예측해야 하는 확률 게임이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도로 위에는 내 상상력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상황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영상을 통해 간접 경험 데이터를 축적하고, 머릿속으로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만약 저 상황이 내 앞에서 벌어진다면? 나는 멈출 수 있는가?'


하지만 그렇게 데이터를 수집하고 만반의 대비를 하는 내 눈에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아니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사고들이 보인다. 영상 속 세상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무법천지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밤, 가로등 하나 없는 국도. 운전자는 규정 속도를 준수하며 달리고 있다. 그때,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심지어 무단횡단 금지 펜스를 넘어서!) 차로 뛰어든다.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을 틈도 없이 '쿵'. 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사고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찰과 보험사의 첫마디는 운전자의 억장을 무너뜨린다.


"전방 주시 의무 소홀입니다. 차 대 사람 사고라 운전자 과실이 없을 순 없어요."


이 말은 과연 논리적인가? 나는 이 상황을 볼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비유를 지울 수 없다. 만약 내가 길을 가면서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고 치자. 물론 허공에 대고 내 팔이 닿는 범위 내에서만 휘둘렀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내 주먹이 지나가는 궤적 안으로 불쑥 자기 머리통을 들이밀어서 맞았다면? 이때 경찰이 와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왜 주먹이 지나가는 궤적에 사람 머리가 들어올 걸 예상하지 못했습니까? 당신이 때린 거니 치료비 물어주세요."


이게 말이 되는가? 지나가던 개가 웃을 논리다. 법이라는 테두리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그어진 '약속의 선'이다. 운전자는 그 선 안에서, 정해진 신호와 속도를 지키며 운전했다. 반면 무단횡단자는 고의로 그 선을 넘었다. 안전을 위한 약속을 깬 것은 보행자다. 그런데 왜 약속을 지킨 사람이 약속을 깬 사람의 치료비와 합의금을 걱정하며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하는가.


무인 상점에서 물건을 훔친 도둑에게 "주인이 없는데 물건을 진열해 둔 가게 탓도 있다"고 판결한다면 전 국민이 들고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유독 도로 위에서는 이 말도 안 되는 '약자 보호의 논리'가 통용된다. "그래도 사람이 다쳤잖아요"라는 감성팔이가 법치(法治)를 집어삼키는 순간이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기형적인지 더욱 명확해진다. 미국이나 유럽 등 소위 교통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원칙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룰(Rule)을 깬 자가 책임을 진다." 무단횡단을 하다가 사고가 나면, 운전자가 규정을 지켰다는 전제하에 보행자 과실이 100%다. 심지어 운전자가 급정거하느라 파손된 차량 수리비와 운전자가 겪은 정신적 트라우마에 대한 위자료까지 무단횡단자가(혹은 그 유가족이) 물어내야 한다. 이것이 너무 가혹한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안전'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법을 어기면 내 목숨도, 내 재산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경각심이 있어야 사람들은 규칙을 지킨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거꾸로 간다. 무단횡단자에게 치료비를 물어주고, 자라니(자전거+고라니)와 킥보드들이 차도와 인도를 넘나들며 곡예운전을 하다가 차에 들이받혀도 운전자가 '가해자'가 된다. 법이 떼법을 용인하고, 보험사가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합의하시죠"라며 불의를 종용한다.


이런 시스템 아래서 운전자는 도로 위의 '잠재적 범죄자'일 뿐이다. 신호를 지키고, 정속 주행을 하고, 방어 운전을 해도 소용없다. 누군가 작정하고 내 차 앞으로 뛰어들면 나는 한순간에 전과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 그것은 운전대를 잡는 모든 이들이 겪는 '러시안룰렛'과 다름없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약자란 누구인가? 법을 어기고 도로로 뛰어든 사람이 약자인가, 아니면 법을 지키고 세금을 내며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다 날벼락을 맞은 운전자가 약자인가.


단언컨대, 법을 지키는 사람이 호구가 되는 사회에서 '정의'는 죽었다.


자신의 몸을 담보로 타인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그들을, 우리는 더 이상 '보행자'라 불러선 안 된다.

그들은 도로 위의 무법자이자, 합법적 자해공갈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