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다시 교사로 태어나다.
평생을 도시에 살아왔던 나에게 시골 중의 시골 학교의 일상은 그야말로 낯설고도 새로웠다. 내가 경험해온 삶의 리듬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는 오히려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이 학교는 ‘벽지’에 위치한 중학교다.
혹시 ‘벽지’라는 개념이 낯선 독자도 있을까 싶어, 잠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벽지란 1967년 제정된 「도서·벽지교육 진흥법」에 따라 지정된 지역을 말한다. 산간, 낙도, 수복지구, 접경지, 광산지구 등 지리적·경제적·문화적 여건이 열악한 지역으로, 교육부가 별도로 지정한다. 정선군, 태백시와 같은 강원특별자치도의 일부 지역이 대표적인 벽지로 분류된다. 단순히 ‘시골’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국가가 인정한 ‘시골 중의 시골’, 그중에서도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내게 그저 이색적인 풍경으로 남지 않았다. 이 학교와 학생들을 만난 시간은 나의 교육관을 흔들어 놓았고, 결국 나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게 되었다. 그러니 이 경험은 내 인생에서 꽤 중요한 전환점이라 말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교사로서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학교는 보육, 공부는 학원”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 끊임없이 늘어나는 행정업무와, 악성 민원, 그리고 교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위상 하락은 나를 서서히 지치게 만들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교사가 되었지만, 현실은 그와는 너무 달랐다. 동상이몽이었고, 그 괴리감은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들었다.
그런 내게 이곳은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우선, 이곳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 없다. 읍내 학원에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야 하지만, 그 시간표에 맞추기란 쉽지 않다. 하교 후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더 어렵다. 버스를 놓치면 대체 수단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 사정상 학원을 보내는 것이 어려운 가정도 많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불행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삶의 만족도가 꽤 높다. 학교는 이들에게 단지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다. 친구들을 만나고, 운동을 하고, 하루를 살아내는 아주 소중한 공간이다. 학교에 오는 것이 즐겁기에 결석은 거의 없다. 지각도 드물다. 무엇보다도, 교사의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선생님 덕분이에요.”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건넬 줄 아는 아이들이다. 그 진심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 때가 많다.
대학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필자가 논문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던 날, 학생들에게 수도권 청소년들의 ‘학원 뺑뺑이’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부럽지 않다”, “불쌍해 보인다”는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충격이었다. 교사로서 “너무 꿈이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꼭 틀린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좋은 삶’을 너무 좁게 정의해왔다. SKY에 진학하고, 전문직이 되는 것만이 성공이라 믿었다. 그 외의 삶은 ‘차선’이거나 ‘실패’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농부도 있어야 하고, 환경미화원도, 건설노동자도 필요하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곳 아이들은, 나보다 더 일찍 삶의 다양성과 가치를 받아들인 건 아닐까. 우리의 교육 현장이 다수의 실패자를 양성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교사로서 반추하기도 한다.
시골 중학교의 일상은 소박하지만 단단하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다시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