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궐족, 한국, 조지아가 엮인 유라시아의 길 위에서
코카서스 산맥을 둘러보며, 새삼 한국사를
‘반도’라는 고립된 공간 속에서 전개된
이야기를 꺼내어 이해해 보려고 한다.
조금만 시야를 넓혀 북방으로 향하면,
초원을 가로질러 달리던 수많은 말발굽의
흔적들이 우리의 역사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심에 '돌궐족(Göktürk)'이라는 이름이 있다.
생경하게 들리겠지만 초등학교시절부터
더듬어가 보면 역사책 속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다.
돌궐족은 6세기 중엽, 오늘날의
몽골 초원에서 등장한 유목
'튀르크계 제국'이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하늘의 튀르크(Kök Türk)'라 불렀으며,
철을 다루는 기술과 뛰어난 기마 전술로
북아시아를 제패했다.
이들이 동쪽으로는 중국과 만주,
서쪽으로는 카프카스와 페르시아까지
세력을 넓히던 시기,
한반도 북부에서는 고구려가
만주의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두 세력은 서로를 직접적으로 만난 기록은
남기지 않았으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고구려와 돌궐은 모두 '수나라'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있었으며,
이는 간접적인 전략적 연대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고구려가 을지문덕의 지략으로
수나라 30만 대군을 압살 하던 그 시기,
돌궐 역시 서쪽 국경에서 수나라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들의 말발굽이 잦아들고,
돌궐이 사라진 자리에 발해가 등장했을 때,
그 흔적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발해는 돌궐의 후계 세력인 위구르와
간접적인 교류망을 형성하며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에 참여한다.
발해의 수도 상경성에서 출토된 중앙아시아식 유리,
금속 공예품은 북방 유목 세계와의 문화 접속이
있었음을 증명해 준다.
한편 돌궐족은 서쪽으로도 향했다.
그들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지금의 조지아(Georgia)의 북부 지역까지
세력을 뻗쳤다.
돌궐의 서부계 후손인
'하자르 칸국(Khazar)'은 7~10세기 동안
조지아 국경을 넘나들며 교역과 충돌을 반복했다.
조지아 인들에게는 돌궐이 이름 모를
‘북방의 침입자’였고, 때로는 카프카스 방어선의 시험대였다.
이곳은 당시 동로마 제국, 사산 왕조,
돌궐계 유목민족이 삼각 구도를 이루던 접경지였다.
조지아의 언덕에서 위로 올라가면 곧
초원이 열리고, 그 끝은 중앙아시아로
이어진다.
조지아는 유럽과 아시아가 숨을 맞대는 협곡이었고,
돌궐은 그 숨결을 따라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고구려에서 발해로,
위구르에서 하자르로,
실크로드라는 길 위에서 민족과 문명이 얽히고설켰다.
한국과 조지아는 돌궐이라는 북방 유목 제국을 매개로,
같은 유라시아의 스펙트럼 안에서 교차하는 이웃이 되었다.
우리가 돌궐을 단지 과거의 유목 민족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조지아를 이어주는 문명의 중개자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람을 따라 달리던 말,
그들이 만든 길은 지금도 지도 위에
흐릿하게 남아 있다.
실크로드는 끝나지 않았고,
그 길 위에서 우리도, 조지아도
여전히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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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민족들
작사: 콩새작가
작곡: 수노
( 1절)
푸른 깃발 하늘 아래
철을 담은 말굽 소리
동쪽 끝 고구려 성 위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네
수와 당의 바다를 건너
우리는 서로 알지 못했지만
너의 적은 나의 적이었고
초원은 하나의 길이었네
돌궐의 말은 멈추지 않고
별빛 따라 서쪽으로
조지아의 언덕 넘어
우리의 흔적을 남겼네
수천 년을 지나도
그 길 위에 남아 있는 숨결
너와 내가 걸었던
초원의 기억, 실크로드의 노래
(2절)
발해의 도성엔
황금과 유리의 빛이 비치고
조지아의 성채엔
북방 바람이 스쳐 지나가네
우린 지도 밖의 친구
역사의 끝자락에서
하늘을 믿고 달리던
말의 자손들
이름은 달라도
꿈은 같았지
하늘과 맞닿은 길에서
자유를 품었네
돌궐의 말은 멈추지 않고
별빛 따라 서쪽으로
조지아의 언덕 넘어
우리의 흔적을 남겼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그 길을 걷는다
너와 나,
길 위의 민족들
하나의 바람, 하나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