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여섯 살이었을 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이야기다.
나는 '어린이집 입학안내' 책자의
[표지 그림]이 필요했다.
유아가 그린그림으로 표지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 여섯 살짜리 둘째 아들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고 요구했다.
"네가 그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무거나
그려줘"라고 부탁했더니 아들은 이런 그림을
그렸다.
여섯 살 아이의 그림은 설명이 필요 없다.
그 자체로 이미 완결된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얀 종이 위에 그려진 노란 해는 그냥
동그라미가 아니고,
소용돌이처럼 말린 선은, 세상을 향해 퍼져
나가려는 마음의 움직임이었다.
아이는 해를 ‘빛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으로 그렸다.
그 해는 따뜻함이 아니라 생명에 가까웠다.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나무를 보면,
아이는 세상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굵은 갈색 줄기, 그리고 그 위에 터져
나오듯 피어난 꽃들.
색은 섞여 있고, 형태는 일정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조화롭다.
어른의 눈에는 서툴게 보이지만,
아이의 세계에서는 완벽한 균형이다.
왜냐하면 그 나무는
'아이가 좋아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노란색의 사람이
서 있다.
얼굴도 단순하고 몸도 선 몇 개로
이루어져 있지만, 한 손을 들어 나무를
향해 인사하듯 손짓한다.
그 모습은 설명 없이도 읽힌다.
“나는 지금 행복해.”라고.
하늘을 나는 두 마리의 새도 흥미롭다.
하나는 진분홍색, 하나는 파란색.
굳이 현실과 맞출 필요 없이, 아이는 마음이
원하는 색을 선택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느낌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점점 ‘정확하게’
그리는 법을 배우지만, 그만큼 ‘솔직하게’
그리는 법은 잊어간다는 것을 이 그림을 보며
문득 깨닫는다.
여섯 살 아이는 아직 세상을 판단하지
않았다.
잘 그려야 한다는 기준도, 틀려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도 없다.
그저 느낀 만큼 그리고, 좋아하는 만큼
색을 얹는다.
그래서 이 그림에는 기술 대신 진심이
남아 있다.
지금의 나는 저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나는 이 그림을 보며 묻는다.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고,
조금 어색해도 괜찮고,
그저 좋아서 손을 내밀던 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한 번쯤 저 그림 속
노란색 사람처럼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게
손을 흔들던 존재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이의 그림이 다시
기억하게 한다.
그림을 그린 아들은 이제 2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그림을 보여주자, 그는 잠시 멈춰 서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이거… 진짜 제가 그린 거예요?”
나는 대답 대신 웃음이 먼저 나왔다.
분명 그 아이의 손에서 태어난 그림인데,
정작 그 아이는 그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섯 살의 시간은 그렇게 멀리 가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색연필의 감촉도,
종이를 가득 채우던 햇살의 온기도,
지금의 그에게는 기억이 아니라
흔적이었다.
그림 속에는 분명 ‘그때의 아이’가
살아 있다.
아무 망설임 없이 색을 고르고,
틀릴까 봐 지우지 않고,
좋아서 그리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노란 해는 과장되게 크게 그려져 있고,
꽃은 정확한 형태 없이 터지듯 피어나
있다.
날아가는 새들은 실제 컬러와 상관없이
마음 가는 대로 칠해져 있다.
그 모든 것이 서툴지만, 틀린 곳은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라면서
이렇게 그리지 못하게 되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맞게 그리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비율을 맞추고, 컬러를 고르고, 틀리면
지우고 다시 그린다.
그 과정에서 틀리지 않는 대신 솔직함을
조금씩 잃어간다.
그래서 그 아이는 자신의 그림을 보며
낯설어한다.
그림이 낯선 것이 아니라, 그때의 자신이
낯선 것이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것뿐이라는 것을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림은 남아 있고,
컬러도 남아 있고,
그날의 마음도 여전히 종이 위에 있는데
우리가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을
잠시 잊고 있다.
이 그림은 아이의 낙서가 아니다.
한 사람이 가장 솔직했던 순간의 기록이었고,
아직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던 시절의
증거였다.
“왜 기억이 안 나니?”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괜찮아. 기억나지 않아도 된다.
대신 가끔은 틀리지 않으려고 애쓰지 말고,
좋아서 그리던 그 마음으로 너의 그림을
그리면 된다.
그럼 언젠가는 그 아이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성인이 된 그는, 더 이상 어린 시절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https://suno.com/s/bNp4yL6ta7MFWXre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하얀 종이 위에 햇살이 내려와
동그란 해가 나를 불러와
서툰 선 위에 꽃들이 피어나고
작은 마음이 세상을 채워가
나무 아래 서서 손을 흔들며
이 순간이 전부인 것처럼
이름도 모른 채 웃고 있는 나
그때의 나는 참 자유로웠지
그림 속 나는 아직도 웃고 있어
틀리지 않는 마음으로
색이 번져도 괜찮다 말하던
그 아이로 남아 있어
세상은 자꾸 나를 고치려 해도
나는 다시 그려볼게
여섯 살 그날의 햇살처럼
나를 다시 밝혀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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