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아이를 파는 여자

by 남궁인숙

그날은 어린이집을 처음 개원하고서 ‘학부모 입학 설명회’를 하는 날이었다.

영·유아교육과 관련하여 조기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갑자기 학부모 한 분이 팔짱을 낀 채 다리를 꼬고 앉아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원장 선생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셨나요?”라고 하였다. 순간적으로 질문을 받고 나는 몹시 당황했다.

“그~ 그럼요. 아들이 둘이나 있어요.” 떨리는 음성으로 겨우 대답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같았으면 이런 질문을 듣고 ‘내가 젊어 보이는구나.’ 하고 얼마나 속으로 기뻐했을까?

팔짱을 낀 채로 아이를 낳아 키워보았느냐고 물었던 이유는 원장 선생님이 너무 젊어 보여서, 30대 후반의 결혼도 안 한 원장 선생님이라고 단정 지으면서, 아이도 안 낳아본 여자가 유아교육을 잘한다고 떠드는 게 가소로웠을 것이다.

그때 이후로 입학상담을 하면서 두 아들에게 아무런 개런티도 주지 않고 양육했던 경험담을 실어 열심히 두 아들을 팔기 시작했다.

“저는 아들만 둘이거든요.”라고 시작하거나 “우리 큰애가 다섯 살인데요.” 하거나 둘째 아이를 상담하러 오는 학부모에게는 “둘째 키우는 일은 조금 더 쉽죠?”라고 하면서 상대도 나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들 수 있게 하였다.

이렇게 개원 초기부터 입학상담을 하면서 두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서두로 상담을 했더니 원아 모집이 수월하게 잘되었다.

거기에 MBTI, TA, DISC, 에니어그램, 부모- 아동 상호작용 등 상담과 관련된 도구들을 활용하여 양육 스킬 향상 팁까지 제공했더니 그곳에 가면 영험한 원장 선생님한테 육아상담을 받을 수 있는 소문난 맛집(어린이집)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기독교방송국 문화센터에서 영어강사로 재직하면서 서른이 넘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였지만 아이는 적어도 둘은 낳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겁도 없이 18개월 차이로 연년생으로 아들만 둘을 낳았다.

낳기는 하였지만 양가 부모님께서 아이들을 키워줄 형편이 되지 못했으며, 지금처럼 아이를 낳기만 하면 어린이집을 통해서 나라에서 책임감을 갖고 키워주겠다고 발 벗고 지원해 주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맡기려면 베이비시터를 채용하거나, 파출부 손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아들 둘을 그것도 연년생 남아를 키워줄 베이비시터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어렵게 구했어도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저는 더 이상 못 해요.”라며 줄행랑을 치곤 했다. 결국 나는 아이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 직장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 무렵에 대교 방송국의 유아교육 프로그램에서 음악 지도를 하던 유아교육계에서는 꽤 인지도가 있었던 선생님께서 아파트 단지 내에 ‘관리동 어린이집’을 개원하였다고 초대를 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어린이집이라는 곳을 방문하였다.


‘아! 이게 내가 할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라는 제2의 직업으로 터닝 포인트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은 어린이집에서 특별활동의 규제가 많아서 영어 학원처럼 운영을 못 하지만, 그 시절은 어린이집에서 영어교육을 전문적으로 보육과정 안에서 운영할 수 있었고, 영어교육을 접목한 어린이집은 학부모님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날마다 아들 둘을 팔면서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은 두 아들을 쉴 새 없이 키워냈지만, 일과 가정, 육아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백조의 쉼 없는 발길질을 하는 일하는 엄마들이 행복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어린이집에서 도와주고 싶었다.

행복한 엄마로부터 양육되는 아이들은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고 발달단계에 따라 몸과 마음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기에 어린이집에서는 맞춤 보육을 지향하였다.

행복한 아이들이 자라는 어린이집의 원장 선생님으로서 무탈하게 잘 자라준 나의 두 아들의 성장과정을 나는 오늘도 열심히 팔고 있다.


- 콩새 작가의 신작 '날마다 아이를 파는 여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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