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축사를 작성하면서

by 남궁인숙

오늘 세종대왕반이 졸업식을 하는 날이다.

출근길에 재윤이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원장선생님! 이제 저 못 만나요."라고 한다.

"알아...... 넌 이제 졸업하잖니."

"슬프죠?"

"........"

"전 슬퍼요."

'이렇게 이쁜 녀석이 있나? 날 만나지 못해 슬퍼해 주다니......'

"넌 이제 초등학교에 가야 해. 초등학교에 가면 다른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될 거야. 그러면 이제 어린이집 일은 모두 잊게 될 거야. 그렇지만 가끔 원장선생님은 기억해 줘. 알겠지."라고 당부하였다.


어린이집 앞에 다다르자 선생님들은 어린이집 현관에 무엇인가를 게시하고, 꾸미고, 추운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우리 선생님들이 참 고맙다는 것이다.

저 젊은 선생님들은 일 년 삼백 육십 오일 동안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행사들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벌이면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교실에서는 졸업식 행사를 위해 예행연습 중이다. 졸업생들은 졸업장 받는 순서를 연습하고, 재원생들은 송사를 연습하고, 교사들은 진행순서와 컴퓨터를 점검하고, 무대 꾸미는 풍선장식 등 졸업식 진행 준비로 여념이 없다. 말을 걸 틈도 없이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난 원장실에 앉아서 축사를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축사를 작성하다 보니 파노라마처럼 일 년간 세종대왕반 아이들의 활동들이 스쳐 지나간다.

조용하고 참한 교사를 만나서 일곱 살 형님반으로서 특별하게 문제가 많지 않았던 반이었다.

그런데 지난주 토요일에 세종대왕반 담임선생님이 문자를 보내왔다.

갑자기 지니어머니께서 지니가 친구에게 발로 차여 다리를 맞았는데 멍이 들었다고 문자를 보내왔다고 하였다. 월요일에 아버님과 함께 원장선생님을 뵈러 온다는 것이었다.

상황을 들어보니 며칠 전 친구들 앞에서 발로 찼을 때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였고, 친구들끼리 사과를 하였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고 반에서는 해결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집에 가서 지니가 효찬이가 발로 차서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는 것이다.

지니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듣고서 무척 화가 났고 그래서 담임선생님께 면담을 요청한 것이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나는 지니의 부모님과 면담을 하였다.

어린이집에서 자녀 양육에 아버지가 개입하는 경우는 드문 일인데 오죽 화가 났으면 직접 원장선생님을 찾아왔을까 싶었다.

나는 지니아버지의 이야기를 끝까지 차분하게 들어주었다.

지니아버지의 말씀은 폭력은 나쁜 것이고, 어릴 때부터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약자에게 위력을 가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니 어린이집에서 해결해 달라고 하셨다.

양쪽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 봐야 잘잘못을 따질 수 있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잘잘못을 따지다가는 사건만 부풀리게 된다.

나는 선생님들과 심도 있는 회의를 거쳐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안전에 관한 교육과 남과 여의 차이, 성에 관한 교육 등을 철저히 시키기로 하였다.

그리고 효찬이 어머니께 담임 선생님은 그동안 아이들의 상황을 알려드렸고, 다행스럽게도 효찬이 어머니께서 먼저 지니어머니께 전화를 하여 사과를 하였다.

같은 나이임에도 효찬이는 남자 아이고, 키가 크고, 몸집이 있기 때문에 눈에 잘 들어오는 친구다.

효찬이 어머니께 상담요청을 드려 어린이집으로 오시게 하였다.

아이를 셋이나 키우는 데도 아이 키우는 일은 너무 어렵다고 하면서 내 앞에서 하염없이 울고 계셨다. 의도치 않았지만 아이들 싸움에 부모님들이 나서게 되었다.

효찬이 어머니와 상담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으로서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아이들의 놀이 속에서의 안전 문제, 약자에게 위력을 가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에 대해 교육하는 기회가 되어 어린이집을 단속하게 되었다.

어린이집 운영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일을 겪었지만 학기를 마치기 일주일 전 이런 일을 겪기도 처음이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졸업식 축사를 작성하면서 세종대왕반 아이들에게 꿈을 향해 나아가기 바라고, 죽을 때까지 배움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를 하였다.

나는 백 살까지 살 것이며 이다음에 내가 죽을 때 세종대왕반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끝맺음으로 축사를 마쳤다.

또 한 해를 보내면서 어떤 아이들의 기분 좋은 유년을 졸업시키고, 또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하면서 그 아이들의 유년 인생을 책임지는 시점에 와 있다.

나는 참 좋은 직업인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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