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갓집 가족여행

by 남궁인숙

매년 4월이 되면 부모님이 잠들어 계시는 고향 선산에서 시제(時祭)를 지내기 위해 전 가족은 4월 20일경 주말은 시간을 비워둔다.

4월에 지내는 시제는 봄의 길일에 조상에게 행하는 제례로 부모와 고조부모까지의 제사를 받드는 의식이다.

살아생전 선친의 당부대로 일 년 중 4월에 시제를 모시는 하루는 1박을 하면서 가족 모임을 한다.

물론 전국구로 흩어져 사는 육 남매가 같은 날 한꺼번에 모이는 일은 어렵지만 가급적 선친의 뜻을 따르기 위해 수년 째 뜻을 같이 하면서 모임이 가능하도록 서로가 노력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 이후로 3년 만에 가족모임이 성사되었다.

가족모임은 먼저 선산에 있는 부모님 묘소에 들러서 시제를 모시고 난 후, 경치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숙박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여행이었다.

가족모임의 책임자는 큰 오라버니로서 모는 계획을 세우고 진행한다.

우리는 뒤에서 따르기만 하면 되지만 여행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을 맡은 사람은 힘이 들기에 잘 부응해 주는 게 도움을 주는 일이다.


올해 가족 모임은 토요일마다 하는 학교 강의가 있어서 참석이 어렵다고 하였지만 종손인 큰 오라버니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서운해하셨다.

큰 오라버니를 납득시키는 일이 더 어려워서 결국 주말에만 수업이 있는 석박사과정 학생들에게 비대면으로 수업을 녹화해서 올려주기로 양해를 구하고 고향을 가기로 하였다.

몇 년째 목디스크를 심하게 앓고 있어서 장거리 운전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므로 모바일로 기차표를 예매해서 용산역까지 갔다.

새벽부터 서둘러서 기차를 타기 위해 출발하였지만 촌각을 다투어 겨우 KTX 기차를 탑승하였다.

'용산역이 이렇게 멀었었나?'

이촌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갈아타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체되어 여유 있게 집에서 나왔는데도 겨우 출발 직전에 탑승하였다.


어딜 가든지 누구와 약속을 하든지 간에 정해진 시간보다 5분 먼저 도착해서 기다려 주는 것이 나의 생활신조였다.

그래서 누군가와의 약속장소가 정해지면 항상 5분 먼저 도착해서 기다려주려고 노력한다.

오늘은 예상 밖의 정각 도착으로 헐레벌떡 기차를 타기 위해 뜀박질을 해야 했다.

나이는 속일 수가 없는 것 같다.

내 뜀박질 속도에 나의 발동작의 리듬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발에 온통 힘을 주고 뛰다 보니 발목도 시큰거렸다.

속도와 리듬이 맞지 않으니 자칫하면 넘어질 수도 있었다.

'아! 그래서 나이 든 사람들이 잘 넘어지고 골절 상을 입는구나~~~'

계단을 사정없이 뛰어내려 달려가서 떠나기 직전의 KTX 기차를 겨우 탑승하였다.

'나는 전력질주롤 하였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내 뜀박질이 전력질주로 보였을까나?'

겨우 예매한 기차 티켓은 특실이었다.

럭셔리한 특실을 기대하고 기차를 탔으나 콘센트가 없는 자리였다.

핸드폰 충전을 해야 하는데 옆사람에게 자리양보를 부탁하기엔 곤히 잠들어 계신다.

그리고 내가 가진 핸드폰의 연결선이 너무 짧았다. 결국 포기!

묵묵히 호흡을 가다듬고 앉아 5시부터 기상해서 지금까지의 시간을 더듬어 보았다.

여유 있게 시간관리를 했는데도 허둥거린 시간이다.


드디어 고향 집에 도착하였다.

여전히 고향은 시골냄새만으로도 정겹다.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오래된 기와집은 여기저기 낡아서 부서지고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화단의 꽃들은 시절의 자태를 뽐내며 예쁜 꽃들을 피우고 있었다.

여전히 화단은 예쁘고 자연의 순리대로 사계절을 보내고 있었다.

꽃을 좋아하셨던 우리 엄마,

엄마의 손길이 닿아있는 화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30년 전 우리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꽃이 가득 피어있던 화단 한가운데 앉혀드리고 사진을 찍어드렸었는데.......

지금의 내 나이까지 사셨던 우리 엄마가 그립다.

우리 엄마는 농사일로 분주했던 시골이었는데도 마당 가장자리 화단에는 항상 일일초, 하늘매발톱, 채송화, 봉숭아, 찔레꽃, 꽃잔디, 수선화 등이 화단 가득 소담스럽게 피어 있었다.

여전히 화단 가득히 꽃은 피어있는데 우리 엄마는 계시지 않았다.



종갓집인 우리 집 앞 선산에 제수음식이 배달되었다.

좋은 세상이었다.

고향 집에 있는 목기를 챙겨서 선산에 올라가서 가족묘지를 닦아주고 차례를 지낼 수 있도록 차례상을 차렸다. 제법 그럴듯하게 한 상이 차려졌다.

종갓집 종손인 큰 오라버니의 진두지휘 하에 축문이 읽히면서 근엄하게 시제를 모셨다.


살아생전 선영모시는 일을 업으로 삼고서 조상을 잘 모셔야 자식들이 잘 된다면서 매일같이 선산을 돌보셨던 우리 아버지,

제사를 모시기 전에는 목욕재계(沐浴齋戒) 하시고, 머리에는 건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철저히 예의를 지켜 제사를 모시던 아버지셨다.

아버지의 시제 모시는 법이 오리지널이었다면, 큰 오라버니의 시제 모시는 모습은 이미테이션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어쩌다가 종갓집 종손이 되어버려서 종손의 역할을 하면서 흉내라도 내려고 애쓰는 큰 오라버니의 모습을 보면서 짠함이 느껴진다.

우리 자매들은 그런 큰 오라버니를 조금이나마 옆에서 도와드리고 싶어 한다.


한 시간 정도 시제를 모시고 예약해 둔 식당에 모여서 점심을 먹었다.

멀리서 오신 친척들은 식사 후 모두 집으로 돌아가시고 우리 형제자매들만 커피숍에 모였다.

인구도 적고, 노령층만 살고 계시는 지평선만 보이는 평야지대인 시골에도 근사한 커피숍이 생겼다.

손님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커피숍에서 큰 오라버니는 이번 모임의 계획을 설명하신다.

모든 경비는 그동안 아버님이 주신 자금과 형제자매들이 모아 온 회비가 있으니 너희들은 몸만 따라오면 된다고 하면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전남 목포를 가자고 하셨다.

목포에 도착하면 목포해상케이블카를 타고 해안가를 산책하고, 유달산을 구경한 후에 낙지 전문점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군산으로 올라와서 수자원공사에 다니는 조카가 미리 예약해 둔 수련원에서 1박을 한다고 하신다.


우리는 목포까지 내려가서 즐겁게 케이블카도 타고 바닷길을 관광하고, 쇠고기 낙지탕탕이, 호롱이 구이, 낙지볶음요리와 목포에 사시는 큰 오라버니의 친구분이 배달시켜 준 흑산도 홍어회를 맛있게 먹었다.

저녁 식사 후, 다시 한 시간 반을 운전해서 군산에 위치한 숙소에 모였다.

하루종일 많은 일을 했음에도 힘든 줄도 모르고, 담소를 나누면서 지나간 시간들을 더듬으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어쩌다가 일 년에 한 번을 만나도 가족들은 할 얘기가 많고, 즐거운 사이인 것 같다.

큰 오라버니는 내일은 또 어떤 스케줄로 우리들을 이끌고 다니실지 기대하면서 잠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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