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체스 드 부르고뉴'가 맥주라고?

Rapunzel! Rapunzel! Let down your hair

by 남궁인숙

휴가기간 동안 제주도의 곳곳을 다니다가 예쁜 카페들을 투어 하였다.

몇 년 전 바닷가 근처 '금능 반지하'라는 카페에 들렀을 때 느낌이 좋아서 이번에 다시 방문하였다.

주인은 없고 흰색 고양이가 먼저 반겨주었다.

우리 일행이 오픈 시간보다 먼저 도착하여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아르바이트 학생이 출근을 하였다.


음료주문을 하기 위해 카운터 위의 메뉴판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다른 곳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특이한 음료들이 냉장고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맛보고 싶어서 주류코너를 두리번거렸다.

아름다운 여인의 로고가 부착되어 있는 갈색병이 눈에 들어왔다.

맥주 이름을 읽으려고 했으나 알파벳 조합들이 영어는 아니었다.

나는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거 주세요."라고 하였다.


조금 기다리고 앉아 있으니 직원이 쟁반 가득 주문한 음료들을 가지고 왔다.

와인 잔까지 세팅되어 나오는 것을 보니 뭔가 특별한 맥주 같아 보였다.

친구는 사진을 먼저 찍어야 한다면서 근사하게 작품 사진을 찍었다.

한 잔 따라서 맛을 보니 체리향 같은 맛도 있고, 와인을 생각나게 하는 산뜻한 산미가 느껴졌다.

와인맥주라 불리는 '듀체스 드 부르고뉴'라는 맥주였다.

사이즈가 큰 것은 코르크 마개로 밀봉되어 있고 와인병에 담겨있어서 고급진 느낌이 들었다.

마치 공작부인처럼 생긴 아름다운 여인의 그림은 이 맥주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이 맥주의 상징인 여인이 누구인지 찾아보니 벨기에 역사 속의 비련의 주인공 '마리 드 부르고뉴'였다.


부르고뉴 공화국은 지금의 벨기에 땅을 중심으로 자리한 풍요로운 영주의 땅이었다.

19세 때 '마리 드 부르고뉴'는 낭시전투에서 사망한 담대공 샤를공으로부터 이 땅을 상속받아 나라를 다스리게 되지만 어려운 상황이었다.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의 전투에서 프랑스와 맞서 싸우던 마리 드 부르고뉴를 구해준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을 하게 된다.

아름답고 현명했던 마리는 막시밀리안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서로 존경하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다가 26세에 낙마사고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녀는 고향인 벨기에 땅에 묻히게 된다.

크게 슬퍼한 막시밀리안은 자신이 죽으면 심장을 꺼내 그녀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한다.

영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인 마리의 이야기는 훗날 '라푼젤'이라는 동화책 소재가 되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듀체스 드 부르고뉴는 어린 나이에 국가 간의 결혼으로 희생자가 되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할머니였던 부르고뉴 공화국의 마지막 후손인 '마리'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만들어진 맥주였다.

맥주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로웠으며, 맥주 맛의 풍미를 더해주었다.



이 맥주는 벨기에 황실에서는 식전주로 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벨기에 서쪽지역에서 생산되는 듀체스 드 부르고뉴 맥주는 발효과정을 거친 후 장기숙성된 맥주와 어린 맥주를 혼합하여 블랜딩 하여 2차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산미가 증폭된다고 하였다.

산미가 맥주의 느낌보다는 와인에 가깝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이 맥주를 독특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맥아와 홉을 이용한 자연효모를 추출하여 과일의 달콤함을 섞어서 장인이 수제로 만들어서 오묘한 맛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맛본 와인맥주 '듀체스 드 부르고뉴'를

카페에서 맛있게 마신 후 서울에서도 맛을 보기 위해 판매처를 알아보았다.

코스트코와 신세계백화점, 홈플러스 주류코너 등에서 팔고 있었다.

가격이 후들후들했지만 자꾸 마시고 싶어지는 맛이다. 그래도 와인보다는 저렴하였다.

맥주를 마시는 동안 마리 공작부인을 떠올리며 때로는 애도하면서, 라푼젤의 긴 성곽에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기억하면서 맛있게 음미해 볼 수 있는 색다른 맥주였다.

"Rapunzel! Rapunzel! Let down your hair."

라푼젤!

당신의 긴 머리카락을 내려뜨려다오. 당신을 구하러 내가 그 머리카락을 타고 성으로 올라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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