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

by 남궁인숙

조식을 먹고 세고비아에서 마드리드로 도착하여 스페인 대표음식인 애저요리(코치니요 아사도)를 점심으로 먹었다.

애저는 식용으로 먹는 생후 2~3주 된 어린 새끼 돼지를 통째로 오븐에 바삭하게 구워낸 요리였다.

기름기를 쏙 빼낸 돈육 바비큐 맛이었지만 돼지고기 비린내가 많이 나서 호불호가 있었다.


점심식사 후 우리는 마지막 일정인 '프라도 미술관' 관람을 위해 서둘러 갔다.

오랜 역사를 지닌 스페인은 다양한 나라와의 전쟁 등으로 역사적 변화를 겪으면서 문화적으로 많이 발달된 곳이다.

스페인 왕가의 미술작품에 대한 미적인 취향으로 유럽의 최고 왕실 컬렉션을 소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프라도 미술관은 1819년 왕립 회화 미술관으로 박물관용으로 설계된 최초의 건물이었다.

15세기 이후부터 19세기 스페인 왕들의 소장품 또는 왕들이 그린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미술관으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이라고 한다.

프라도 미술관을 둘러보려면 한화로 약 3만 원 정도의 입장료로 내야 한다.

검색대에서 엑스레이 촬영 후 통과해서 입장할 수 있다.



그림과 조각을 전시하기 위한 전용 박물관에서 마침 우리가 방문하는 기간에 피카소와 엘 그레코의 작품 비교전이 열리고 있었다.

피카소는 엘 그레코를 무척 좋아해서 그의 작품을 비슷하게 모방하면서 그렸다고 전해진다.


피카소와 엘 그레코 작품 비교전

19세기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부터 중세시대의 작품 또 루벤스, 엘 그레코와 라파엘로, 렘브란트, 디에고 벨라스케스 등 수많은 멋진 유명한 화가들의 원작이 소장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멋진 작품들을 촬영할 수는 없었고 눈에 담아 가야 했다.

셀카봉도 금지, 배낭을 메는 것도 금지, 물도 금지 등 다양한 제약이 있었다.

서울로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관람시간이 30분 정도밖에 없어서 아쉬웠다.

안내 데스크에서 한국어로 된 설명서를 나눠주어 전시실의 구조와 작품위치를 찾아볼 수 있었다.


처음 마드리드에서 미술관이 완공되었을 무렵에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이 쳐들어왔다.

그래서 한동안 미술관 기능을 하지 못한 채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미술관 검색대를 통과하면 로비가 나오고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는 1층부터 작품을 관람하였다.

이태리 화가, 틴토레토가 그린 '씻어주는 자리'라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족식'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잘 알려진 작품이었다.


씻어주는 자리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씻어주는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왼쪽 아치모양의 문에 비치는 하늘을 따라 모든 라인들이 보는 사람의 움직이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

테이블이나 기둥, 바닥의 타일 등이 관람객의 시선에 따라 움직인다. 바로 원근법을 이용한 작품이었다.


다음은 티치아노의 작품인 '카를로스 5세'라는 작품이다.

카를로스 5세

카를로스 5세는 독일 프로테스탄테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의 모습이 귀족답거나 승리에 차 있지는 않다.

근엄한 표정에는 권력에 찬 욕망을 담고 있다.

전쟁에서 승리 후 돌아오는 왕의 모습을 그렸는데

배경이 어둡다.

원래 말을 그릴 때 대부분은 가만히 서 있는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티치아노의 작품에서는 타고 있는 말의 움직임을 아주 정교하게 말이 뛰고 움직이는 동작을 그려냈다.


다음으로 스페인 화가 라스케스의 작품을 눈앞에서 보니 경이로웠다.

벨라스케스는 24세에 궁정화가가 되었다.

그가 그린 '라스 메니나스'라는 초상화는 벨라스케스 자신이 그림 안에 들어가 있다.


라스 메니나스

위 그림은 미술사상 가장 많은 화제를 일으킨 초상화로 손꼽힌다.

그림 속에서 인물만 모두 열한 명이 나오는데

마르게리따 공주, 펠리페 4세와 딸 둘, 아들 하나

마법에 걸린 공주 양쪽에 메니나스 둘, 경호원, 난쟁이, 개, 수녀 등이다.

우리나라에서 번역하기를 '시녀들'이라고 번역하였으나 스페인에서는 예절을 가르치는 개인가정교사를 '메니나스'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포르투갈어로는 '여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의미가 너무 다른 번역의 오류였다

오른쪽에는 난쟁이가 그려져 있다.

'무포너스'라고 하는 난쟁이는 왕 앞에서 책을 읽어주는 역할을 한다.

작아서 꼬마처럼 보이지만 어른 난쟁이였다.

벨라스케스는 난쟁이를 자주 그렸다.

당시에 '궁정 화가'가 많았던 것처럼 '궁정 난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난쟁이가 궁전 안에 많았다

난쟁이는 왕자와 공주가 잘못한 일을 했을 때 대신 매도 맞아 주었고, 익살스럽게 바른말도 하였으며, 자연스럽게 왕족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난쟁이들을 통해 왕족들은 우월감을 가졌다.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 눈에 난쟁이가 자주 띄었을 것이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또 다른 난쟁이를 그린 그림이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었다.


광대 세바스티안 데 모라의 초상

벨라스케스는 난쟁이 세바스티안에게 귀족 옷을 입혀서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게 그렸다.


그림 속의 수녀님은 메니나스들의 스승이며, 까만 옷을 입은 남자는 펠리페 4세의 개인 경호원이었다.


거울에 비친 왕과 여왕의 모습이 보인다. 마르게리따 공주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부모의 시선에서 바라보게 하였다는 것이 핵심이다.

원래는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그려야 했으나 벨라스케스가 본인을 그림 속에 그려 넣고 싶어서 펠리페 4세의 딸을 주인공으로 그렸다고 한다.

왕이 발끈하자 그는 왕과 왕비를 그린 초상화는 많으니 첫째 딸의 생활을 그렸다고 설득하였다고 한다.


왼쪽에 커다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벨나스케스의 모습이 보인다.

벨라스케스는 자기 인생을 걸고 최고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였다.


그림 아래쪽에 앉아있는 개는 왕을 향한 순종을 의미한다.

그런데 왕에게 순종하는 개를 발로 차는 난쟁이의 모습이 보인다.

난쟁이가 개를 발로 찼다는 것은 벨라스케스 자신이 왕실의 추한 모습에 대한 반항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 속에 또 다른 작가들의 그림들이 벽에 빼곡히 그려져 있어서 캔버스의 모든 면이 꽉 차 있었다.

모든 게 벨라스케스가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그 만의 회화 기법이었다.


다음 그림에서 루벤스를 만났다.

17세기 화가 루벤스의 그림에는 누드화가 많았다.

루벤스의 유명한 여인 누드화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을 모델로 그렸다고 전해진다.

풍만한 육체와 기다란 금발은 성매력을 어필한다.

그는 인상적인 초상화를 그리고 드로잉 화로 움직임을 표현하였다.


파리스의 심판

루벤스의 작품 중 '파리스의 심판'은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표현하였다.

그리스 신화의 내용으로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서 ‘싸움’의 여신인 에리스가 던진 금사과를 놓고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 가지라고 하였다.

여신 중에서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인이 서로 금사과를 가지려고 싸움을 하자 제우스는 목동 파리스(훗날 트로이 왕자)를 심판자로 정하고 헤르메스에게 세명의 여신을 파리스에게 데려가도록 명한다.

헤르메스는 파리스에게 '네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이 금사과를 주거라'라고 하였다.

아프로디테는 자기를 선정하면 답례로 절세의 미녀를 얻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파리스의 선택은 당연히 아프로디테였다.


얼마 후 스파르타의 메넬 라오스의 아내, 헬레네 왕비를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가 왕궁을 방문하면서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결국 파리스는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리고 온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신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 속에는 아프로디테와 헤라가 순서 대로 그려져 있다.

공작새가 두 개의 마차를 끌고 있다.


다음 작품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이었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카를로스 4세의 가족 초상화를 그린 로코코 시대부터 바로크 시대까지의 낭만주의 화가였다.

도금을 하는 아버지를 둔 프란시스코 고야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그림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29세에 궁전의 벽에 밑그림을 그리는 일을 시작한다.

43세부터 카를로스 4세의 궁정화가가 되었고,

47세에 휴가를 얻어 세비야로 여행을 하던 중에 중병을 얻어 반평생을 청각장애를 앓게 된다.


키를로스 4세의 가족

카를로스 4세는 스페인에서 바보 왕자로 취급을 당했었다.

나폴레옹이 포르투갈을 뺏기 위해 스페인 영토를 지나가자고 부탁하자 이를 들어준다.

나폴레옹은 포르투갈 영토를 차지하고 돌아오면서 다시 스페인 영토를 지나가자고 부탁을 한다.

카를로스 4세는 다시 허락을 해주었고, 이에 나폴레옹은 스페인 영토를 지나가다가 마음을 바꿔 스페인까지 함락시켜 스페인 영토를 차지해 버렸다.

그래서 나폴레옹에게 나라를 어이없게 뺏겼다고 하여 스페인 사람들은 그를 바보로 취급하였다.


프란스코 고야는 궁정화가로서 카를로스 4세의 가족들의 형편없는 모습을 보게 된다.

는 카를로스 4세의 가족 그림에 페르난도 7세와 그의 할머니의 눈 옆에 있는 점까지도 아주 테일하게 그려 희화화하였다.


할머니 옆에는 얼굴 없는 여인을 그려놓았다.

페르난도 7세가 누구랑 결혼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몸은 그렸지만 얼굴의 눈, 코, 입은 그리지 않는다.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이라는 작품 속에 무능하고 허영심만 가든찬 스페인 왕실을 은근히 비꼬듯이 표현하였다.

카를로스 4 세는 그것도 모르고 이 초상화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지하로 내려가서 작품을 살펴보니 프란시스코 고야의 '검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검은 그림들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들이 아니었다. 지하에 전시된 그림은 프란시스코 고야가 나이가 들어서 치매에 걸렸을 때,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집 안의 벽에 그린 그림들이었다.

미술관에 그것들을 뜯어다가 전시하면서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부터 그린 그림들은 죽음에 대한 절망을 그렸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내면을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아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

신화의 내용에서 크로노스 신은 이 시대의 신 중의 신이었다.

타이탄의 예언 중에서 크로노스에게 아들이 태어난다면 왕의 자리를 뺏는 자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자 크로노스는 아들이 태어날 때마다 두려워서 두 잡아먹어 버린다.

크로노스의 행태에 질린 그의 아내는 어린 제우스가 태어나자마자 피난시킨다.

나중에는 제우스가 신들 중의 신이 된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병마와 싸우던 시절에 그린 검은 그림 연작에서 인간의 광기, 추락한 인간성, 잔인함 등을 그의 그림 안에 표현하고자 하였고, 악의 본능을 고발하는 그림들을 그렸다.

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크로노스 신을 통해서 엽기적이고 거칠게 색감을 넣어 그렸을 것이라고 하였다.


시간이 부족하여 특징적인 몇 개 작품의 설명만 듣고, 우리들은 서둘러 미술관을 나와서 뛰면서 공항으로 향했다.

8일간의 스페인 일정이 너무 알차고 빼곡했지만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은 정말 아쉬움이 가득했다.

특히 프라도 미술관은 반나절을 구경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 곳이었다.

가이드님의 자세한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왔기에

미술관 투어를 길게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

스페인 안녕......

Adios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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