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부짖는 황소 6 - 이중섭 화가

by 남궁인숙


구상 시인은 이중섭 화가의 장례를 치르고 그의 유해를 화장하여 3분의 1은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정릉 계곡에 뿌려주었다.

3분의 1은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에 이중섭 화가의 묘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구상 시인이 이듬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이중섭 화가의 아내, 이남덕 여사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이중섭 화가의 무덤은 서울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다고 한다.

삼성재단에서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을 하며 이중섭 화가의 작품 총 116점을 기증하였다.

116점이라는 숫자는 엄청난 것이다.

이중섭 화가가 남긴 작품은 피난 내려오고 난 이후의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5년 6개월 동안 500점을 그렸다고 하였다.

1년에 100점씩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16점을 이건희 회장 혼자서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이건희 회장이 이중섭 화가를 좋아했는지 느껴볼 수 있다.

그 116점을 모두 나누어 기증하였다.

104점은 중앙정부에 기증하였고, 지방에 있는 미술관들의 활성화를 위하여 12점은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 지정하여 기증하였다.

그래서 116점 가운데 12점은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 가면 이중섭 화가의 진품을 제대로 만나볼 수 있다.


2002년 미술관 개관식에 이남덕 여사가 참석하였다.

그림은 모두 사기당해서 가지고 계신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유일하게 유품으로 남기신 것은 바로 이중섭 화가가 평생 사용했던 팔레트였다.



유일하게 가지고 계시던 이 팔레트를 서귀포 미술관의 개관식 때 가지고 오셨다.

이남덕 여사는 지난해 8월에 돌아가셨다.

마지막 순간까지 재혼하지 않고, 평생 남편만을 그리워하면서 굉장히 힘들게 쓸쓸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이남덕 여사는 생전 인터뷰 때 이런 말씀을 하였다.


"제가 죽으면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 모두 기증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부탁드려요.

남편이 저에게 써준 그 편지들......

그 편지라도 제발 돌려주세요.

죽기 전에 한 번만 더 읽어보고 싶으니 제발 그 편지 좀 돌려주세요."라고.


이중섭 화가는 표현주의 화가였다.

표현주의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화가를 표현주의라고 한다.

무엇을 그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렸는지가 중요한 사조가 표현주의였다.


이중섭 화가의 그림은 피난 내려온 1951년 1월부터 1956년 초까지 단지 5년 동안 그린 그림밖에 없다.

마지막 병원에 계실 때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으니까 그 5년 동안의 감정선이 너무나 스펙터클 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제주도에 머무르면서 그렸던 그림은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는 아름다움을 담아냈고,

가난하지만 가족들과 함께였기에 마음만큼은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감정을 담아내면서 그림을 그렸다

가족을 처음 떠나보내고 난 이후 1년 동안은 가족이 너무 그리워서 그 그리움을 담아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일본에 가서 일주일 동안 가족을 만나고 돌아와서는 성공을 해야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이중섭 화가의 서울 전시회 직전까지의 그림은 다 똑같다고 볼 수 있었다.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그 열망과 희망이 가득 차 있는 그림들이었다.

그리고 서울 전시회가 끝나고 난 이후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자포자기한 그림들을 그렸다.

그림들을 보면 마치 무너져버릴 것 같다.

황소 그림을 보면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중섭 화가는 소를 많이도 그렸다.


싸우는 소, 1953~1954

'싸우는 소'를 보면 모든 그림이 굵은 선으로 힘차게 이어져 있다.

저녁해가 뉘엿뉘엿 해질 무렵에 싸우는 소를 구경하다가 그렸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서울 전시회 이전에 등장하는 이중섭 화가의 그림 속에서 소는 힘이 넘쳐났다.

'소싸움'이라는 작품 보면 앞에 있는 소를 때려죽일 정도로 힘이 넘쳐나는 소가 그려져 있다.

이중섭 화가는 황소를 그릴 때 강렬한 선을 사용하여 단순화하였다.

선으로 황소의 힘과 에너지를 표현하고 있다.

작품의 주제로 황소를 등장시키기도 하고 배경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그는 황소를 통해 제주도의 아름다움과 제주도에서의 힘든 생활 등을 표현하였다.


피 묻은 소

전시회에서 그림이 팔렸어도 그림 대금도 못 받는 상황이 되었고, 그렇게 망한 이후에 '피 묻은 소'를 그렸다.

희망이 없었던 그는 더 이상 가족을 볼 수 없다는 절망에 빠졌고 소문에는 그가 정신이상이 되었다고 했지만 의사의 진단은 간염이었다.


회색 소 , 1955 / 소마미술관

조현병과 거식증을 앓고 있을 당시에 그린 지친 모습의 '회색 소'였다.


흰 소, 1954

그런데 서울 전시회가 끝나고 난 이후에 모든 것을 포기하던 시절에 그렸던 소들의 모습은 그림 속에서 병들어 있었다.

이중섭의 그림에 지주 등장하는 소는 이중섭 화가에게는 자신의 자화상과도 같다고 볼 수 있었다.

가족과의 이별, 그림을 팔아야만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자신의 궁핍한 처지 등을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어려움 속 삶의 의지를 앙상한 흰 소를 통해서 표현하였다.


이중섭 화가가 소를 그리는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는 소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작품의 소재로 등장시키는 주인공은 어린이, 가족, 소, 닭, 새 등이 가장 많이 나온다.

그는 소를 보면 순수한 조선의 냄새가 난다고 하였으며, 소의 커다란 눈망울을 들여다보면 평화롭고 행복했다고 하였다.


이중섭 화가의 그림을 볼 때 그가 이 그림을 그린 시점에 어떤 감정이었는지, 그 상황을 상상하면서 그림을 감상해 보면 그 안에 담겨 있는 이중섭 화가의 감정이 오롯이 전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회가 되어 전시회를 가게 되면 이중섭 화가의 작품을 보면서 전쟁 중에 허무와 실존을 이야기했던 그의 영혼을 느껴보기 바란다.


이중섭 화가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전 세계에 올바르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

나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이라오.


흐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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