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서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꺼내기 위해 의자 위의 짐칸을 열고 올려다보았다.
내 짐 바로 옆에 사각의 노란 종이박스가 단단하게 줄로 고정되어 얌전히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언뜻 보였지만 일본 대표적인 가전제품의 상표 '조지루시'였다.
일명 '코끼리 밥솥'을 누군가 일본여행을 하면서 구입해서 짐칸에 실어 두었을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내 옆좌석에 앉은 친구를 보면서 튀어나온 말이
"아니, 요즘에도 일본여행을 다녀오면서 코끼리 밥솥을 사 오니?"라고 하였다.
내 앞에 서 계셨던 60대 정도의 중년 남성이 나를 휙 돌아보더니
"왜요? 제가 샀습니다. 창피해 죽겠습니다."
"아들이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데 작은 밥솥 한 개를 사서 보내달라고 해서 마침 일본여행하면서 전자상가에 쇼핑 갔다가 샀는데 정말 창피해 죽겠습니다."
나를 향해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마치 예전부터 나와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구시렁거렸다.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무슨 코끼리 밥솥을 샀느냐고, 우리 쿠쿠밥솥이 더 좋다고 그럽니다."
사실 아는 사람이었다면 나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착륙해서 비행기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면서 사투리를 사용해 계속 자기 이야기를 하는 60대 남성의 이야기가 재미있어 지루한 줄 몰랐다.
수년 전에 내가 사용했던 코끼리 밥솥의 추억도 떠올랐다.
1991년도에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갔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친구 여동생과 함께 내 친구를 만나러 도쿄로 놀러 갔다가 전자상가를 구경했었다.
아키하바라에 가면 유행하는 전기제품을 파는 전문상가들이 즐비했었다.
그때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에서 코끼리 밥솥을 사 와서 2000년도까지 밥솥의 질이 좋았던 코끼리 밥솥을 사용했었다.
1974년 조지루시라는 일본 회사에서 전기보온밥솥을 출시하여 이때부터 일본은 전기밥솥으로 유명해졌다.
밥솥에 그려진 상표는 코끼리를 이용해서 마크를 만들었기에 음식을 만드는 주부들 사이에서 '코끼리 밥솥'으로 소문이 났다.
내솥이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어서 가벼웠고, 코끼리 밥솥에 밥을 지으면 찰지고 윤기가 좌르르 흐르고, 따뜻한 밥을 오래 보관할 수 있어서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80년대에 우리 집에도 코끼리가 그려진 보온밥솥과 보온 주전자가 항상 안방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전자제품기술을 가진 일본에서는 코끼리 밥솥으로 그 당시 전 국민이 먹고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한국전자회사들은 일본의 코끼리 밥솥을 따라잡기 위해 수많은 코끼리 밥솥을 분해하면서 연구했을 것이다.
부단히 노력한 결과 결국 90년대에는 우리 전통 무쇠가마솥밥의 원리를 이용해서 개발된 우리나라 "쿠쿠밥솥"을 만들어 냈다.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우리가 80년대에서 90년대 사이에 일본여행을 다녀오면서 코끼리 밥솥을 한 개씩 사들고 왔던 것처럼 그들도 2000년대 이후부터는 한국여행을 다녀오면서 '쿠쿠밥솥'을 한 개씩 사들고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탑승하는 진풍경을 보여주었다.
밥 짓는 속도도 빠르고, 탄수화물의 당도도 적당한 한국산 쿠쿠밥솥을 선호하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볼 때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한국의 고령화 현상은 일본을 많이 닮아간다.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고령자들을 위한 밥솥이 유행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치아도 상하고, 치아로 음식물을 잘 분쇄하지 못한다.
소화력도 떨어지고, 위도 나빠지고 그래서 영양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이러한 노령인구를 위해 또다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가 시작되었다.
노인을 위한 밥솥을 판매한다고 하였다.
1970년대의 밥솥유행과는 다른 의미의 유행이지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영역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고령자를 위한 식품회사나 가전제품 회사들이 노인들을 위한 발명제품들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밥솥이다.
이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혀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제조하는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고 하니 참 영리한 민족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블루오션으로 존재한다.
일본의 코끼리 밥솥을 따라잡아 쿠쿠 밥솥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에서는 어떤 제품들이 블루오션으로 작용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