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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Jan 04. 2024

미친 듯이 옷을 샀다

 옷장에 묵은 옷들이 작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앉아 더 이상 옷을 걸어 둘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옷장을 들여다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과거에 나는 옷장에 가득 차 있는 수많은 옷을 사는 순간 행복했을 것이다.

 십 년 전 집 인테리어를 하면서 건축 디자이너로부터 옷장에 있는 옷들을 정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디자이너가 말하기를 인테리어가 심플해지기 위해서는 장롱 안 옷들을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미니멀 라이프, 노퍼니처, 심플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였다.

나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장롱 안의 옷들을 정리하였다.

나와 체격이 비슷한 친한 친구에게도 보내주고, 고물상에도 가져다주었다.

그러면서 나의 옷장은 크기가 반으로 줄었고, 집 안은 조금 더 넓어졌다.

옷을 절대로 사지 않으리라 다짐도 하였다.

그 후로 10년이 지났다.

옷장을 열어보니 옷장 안 옷들은 서로 부대끼며 꺼내달라고 아우성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옷을 좋아한다.

어릴 때는 명절이 돌아오면 새 옷을 사주셨다.

나는 그런 옷들을 그냥 입지 않고 새 옷에 비즈를 붙인다던가 또는 단추를 옮겨 달던가 하면서 뭔가 다른 것들을 가미하여 옷을 입었었다.

아마도 남과 다름을 추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마침 큰언니가 옷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서울에서 노라노 양장학원을 다녔었다.

큰언니는 샘플로 내 옷을 만들어 입혔었다.

나는 큰언니의 옷 디자인 마루타였다.

그 당시가 1970년대 중후반이었지만 나는 뉴트렌드를 쫒는 옷들을 입었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입은 바지는 조거팬츠였고, 몸에 달라붙는 조끼, 좌우가 대칭인 블라우스 등 큰언니는 옷을 만들어서 나에게 입히는 것을 좋아하였다.

내가 옷을 좋아하는 이유에 큰언니도 일조했을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첫 월급이 38만 원 정도였다.

나는 N사의 캐시미어 투피스를 22만 원을 주고 단번에 사 입었다

내 수입의 대부분은 옷을 사는데 모두 사용하였다.

엄마는 돈을 버는 막내딸인데도 항상 용돈을 별도로 주셨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대에도 난 정말 철이 없었다.

 자주 가지는 않지만 나는 마트에 가는 것보다 쇼핑몰에 가서 옷구경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요즘 유행하는 천의 재질과 패턴, 색을 살펴보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 색의 트렌드와 심리학을 매칭하여 강의 거리를 찾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쇼핑몰에 들어가면 그냥 나오는 법은 없다.

반드시 티셔츠 한 장이라도 사서 들고 나오며, 질 좋고 유용성 있고 저렴한다는 판단이 들면 같은 종류의 옷을 몇 개 더 산다.

나는 그만큼 옷에 진심이다.


 어제는 친구와 대형 쇼핑몰에 갔다가 70%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눈에 레이저를 쏘면서 미친 듯이 옷구경을 하였다.

브랜드의 특징이 외국인에게 어울리는 독특한 색과 디자인들로 거의 한국인에게는 눈길이 잘 가지 않는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구입하는 옷의 가짓수가 네 종류 이상이면, 세일 가격에 25%를 더 세일한다고 악마의 속삭임처럼 옷가게 종업원은 빛의 속도로 쇼핑하는 나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짧은 시간에 옷을 사는 찰나의 기쁨을 최대한 누렸다.

삼성페이의 보이지 않는 결제 방식에 내 통장의 잔고가 서서히 비어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옷가지의 숫자를 늘려갔다.

잠시 옷을 사면서 화색이 돌면서 행복해졌다.


  

 당근 콘텐츠 이소연 작가가 쓴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서 내 옷장도 체크해 보았다.

작가는 내가 산 수많은 옷들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 된다고 지적한다.

패션산업은 유행과 소비의 주기를 위해 가격 경쟁을 일으키고, 가격의 하락을 일으켜 결국 개발 도상국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부담이 돌아가게 한다고 하였다.

작가는 옷을 사지 않으면 환경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옷을 사면 섬유 쓰레기가 늘어날 것이고, 빠르게 지나가는 유행으로 2030년쯤에는 전 세계는 연간 1억 3400만 톤의 직물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출근하면서 옷장을 열고 '오늘은 뭘 입을까' 고민한다.

옷장에는 옷이 가득한데 나는 매일 입을 옷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옷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나는 어제도 여전히 미친 듯이 옷을 샀다. 

나의 소비습관은 쇼핑몰을 가는 순간 고개를 쳐들었고, 훨훨 날갯짓하면서 싹쓸이를 해댔다.


 80억 명의 인구가 해마다 옷을 800억 벌을 구매한다고 한다.

을 태우면 소각하는 과정에 다이옥신이 방출되어 환경도 해친다.

그중 한몫을 하는 나!

환경보호를 위해 옷을 사지 않아야 하는데......

나의 옷을 사는 날갯짓이 토네이도를 일으키면서 환경의 재앙이 될 수 있다.ㅠㅠㅠ

 컴퓨터를 켜면 팝업이 뜨는데 대부분 옷구매 사이트의 선전들이다.

내가 언젠가 옷구매 사이트의 옷을 구경했기에 알고리즘이 뜨는 것이다.

나는 속절없이 팝업창을 또다시 열고 있다.


 소비자 행동론에 의하면 유행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계획적으로 만들어서 소비자의 주머니를 겨냥하여 계속 공급하는 것이라고 한다.

공급에 따른 소비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전략들을 꺼내 놓는 것이다.

소비자(나)는 알고 있지만 모른척하고 소비를 일삼는다.

그래서 가난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옷이 꼭 필요한 이유를 만들어낸다.

소비에는 이유가 있다고 우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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