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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Feb 05. 2024

사명을 가진 일

 작년에 지회장으로서 퇴직하시는 원장님들을 보내드리는 퇴직식에서 송별사를 해달라는 권고를 받았었다.

있는 생각, 없는 생각과 들은 풍월들을 모아서 가슴 절절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송별사를 작성하여 퇴임원장님들 앞에서 송별사를 해드렸다.

그러기를 벌써 1년이 지났다.

출근하자마자 모 지회장님께 전화가 왔다.

올해는 본인이 퇴임식에서 송별사를 하기로 되어 있다고 하면서 작년에 원장님께서 송별사를 감동적으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였다.

후배로서 송별사를 커닝하고 싶은데 보여주실 수 있느냐는 전화였다.

어려운 부탁이 아니기에 흔쾌히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서 컴퓨터 내장하드를 뒤져보았다.

다행히 작성한 글이 남아있었다.

나는 작년에 작성했던 송별사를 모 지회장에게 보내주고 다시 읽어보았다.

내 자랑 같지만 일 년이 지난 송별사였는데 제법 잘 쓴 것 같다.

다시 읽어봐도 가슴 뭉클하였다.

나로 인해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정년퇴직하는 날까지 훌륭하게 잘 마칠 수 있다는 건 칭찬받을 일인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은 직업인으로의 삶만이 아닌  바로 사명이리라.


 이 세상에 많은 일 가운데서 ‘영유아 보육’이라는 임무를 대하는 지혜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국공립어린이집 원장직이 찬란한 권위나 물질적인 풍요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택한 의지와 용기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합니다.

오랜 기간 국공립어린이집 생활을 마감하고, 이렇게 퇴직을 하는 원장님들의 마음은 어떠하실까요?

‘섭섭 시원할까요?’ ‘아니면 시원 섭섭할까요?’

원장님들의 마음은 동전의 두 면처럼 그 모두일 것입니다.

퇴직을 앞두고 가장 아쉽다면 점심시간에 조리사님께서 차려주는 점심식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일찍이 국공립어린이집 원장직을 택하시어 오랜 기간 한결같이 영유아보육에 헌신해 오신 서울시 국공립원장님들께서 오늘 명예로운 퇴임식을 갖게 된 것을 정말 뜻깊게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빚내주시기 위해 참석해 주신 각 구 퇴임 원장님들을 비롯하여 내외 귀빈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퇴임을 맞이하신 서울시 국공립어린이집 원장님들께서는 어린이집이 지금처럼 크게 인기가 없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영유아보육에 남다른 뜻을 품고 서울시 국공립어린이집 원장으로서 일 해 오신 분들이십니다.

서울시 국공립원장님들께서는 남다른 보육의 열정을 가지신 분으로 '어린이집 원장은 투명성과 공공성을 지닌 원 운영'이라는 신념 하나로, 다른 곳에 한 눈 팔지 않고 초지일관 국공립어린이집에서 모범적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시다가 오늘 이렇게 영광스러운 정년 퇴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긴 세월 동안 보육에 몸담고 한 길만 걸어오신 원장님들의 삶 속에는 늘 평화롭고, 행복하고, 웃을 일 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소명이라 여기면서 의연하게 보내왔지만 때로는 속이 썩어 문드러지기도 했을 것이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8개의 치아를 내 보이며 웃어야 했고, 억울한 일에도 눈물을 삼켜야 하는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수년 동안 소통과 화합으로 보육인으로서 역할을 훌륭하게 이루어 무탈하게 이 자리까지 와 주신 선배 원장님들께서는 이제 비록 국공립어린이집을 떠나시지만 많은 후배와 동료들이 항상 우리 원장님들 곁에서 원장님들의 높은 뜻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퇴직 후에도 부디 영유아보육 발전을 위한 원장님들의 뜨거운 열정은 버리지 마시고 앞으로도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을 베풀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요즘 ‘인생은 70부터’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원장님께서 그동안 노심초사 어린이집 운영에만 전념하시느라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하셨을 줄 압니다.

이제 그동안 못다 하신 취미생활도 하시고, 건강관리도 잘하시면서 제2의 인생을 오래오래 멋지게 살아 주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비록 몸은 떠나시지만 후배들의 가슴속에 항상 오래 기억되고 있을 것입니다.

 영유아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나는 교사는 당연히 보육교사였을 것이고, 어린이집원장선생님이었을 것입니다.

그 교사로부터 때로는 원장선생님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고 자랐느냐에 따라 영유아의 삶은 바뀔 수 있었습니다.

영유아들에게 던지는 질문 하나, 눈빛 하나에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고, 깊은 사랑과 존중이 듬뿍 담겨 있었어야 했습니다.

어린이집원장선생님은 영유아가 만나는 작은 세계였을 것입니다.

영유아들이 자기보다 2배, 3배 더 큰 원장선생님이 무릎을 꿇고 깊은 시선을 맞춰줬을 때,

존댓말로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줬을 때,

큰 손과 너른 품으로 꼭 안아줬을 때,

어떤 원장선생님을 만나서 환대받았느냐에 따라서 영유아는 어떤 특별하고 커다란 세상을 마주했을 것입니다.

그 아이는 잘 자라서 어른이 될 것이고, 영유아였던 그 아이는 본인이 얼마나 귀했었는지 알 것입니다.


 끝으로 이 자리를 빛내 주기 위하여 참석하여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퇴직하시는 모든 원장님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드립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2023년 서울시국공립어린이집연합회 00구 지회장 0000 드림.     


이런 송별사를 듣고 나만 감슴 뭉클했을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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