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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Feb 26. 2024

길상사  진영각의 법정스님

  성북구 성북동 부촌으로 알려진 골목길을 따라서 절 하나가 있었다.

1970년대 이후 대원각이라는 한정식집은 당대 최고의 정치인들, 유명인사 등이 드나드는 음식점(요정)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면서 관광유흥음식점으로 지정하여 세금혜택 등도 주어졌다고 한다.

1950년대부터 음식점을 하면서 부를 이룬 그곳의 주인은 길상화 김영한이라는 사람이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팔려가다시피 시집을 갔지만 일찍 남편을 여의고 16세에 기생이 되었고, 어떤 후원가에 의해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 후원자가 함흥에 있는 감옥으로 수감되자 그녀는 일본에서 함흥으로 와서 요정(기생집)을 차려서 운영하게 된다.

그러면서 백석 시인을 만나서 사랑을 했지만 그들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 이별하게 된다.

백석 시인의 가족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지만 그녀는 사는 동안 백석 시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였다.


 서울로 내려와 백석 시인을 그리워하면서 지금의 길상사 자리에 대원각이라는 음식점을 열고 부를 쌓게 된다.

그 후로 많은 부는 쌓였지만 기생을 천박하게 여기던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무소유라는 법정스님의 책을 읽고서 크게 감명을 받게 된다.

법정스님을 찾아가 절터로 써달라고 하면서 대원각 자리를 기부하고자 요청하였다.

그 당시에 수천 평의 땅을 쉽게 조계종에 시주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법정스님은 그 땅을 덥석 받을 수가 없어서 고사를 하였다고 한다.



10여 년이 지나 1995년에 법정스님은 그녀의 뜻을 받아 절을 세우고 그녀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지어주었다.

그녀의 이름을 따서 길상사가 되었는지, 송광사의 옛 이름이 길상사여서 인지 알 수는 없으나 대한불교조계종의 송광사의 말사로 등록하여 길상사를 세웠다.

우연의 일치인지 법정스님이 처음 스님생활을 시작했던 곳이 송광사였는데 송광사의 옛 이름도 길상사였다.

전국에 길상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찰은 여러 곳이 있다.

그중의 한 곳이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인 것이다.

법정스님이 여생을 보내고 마지막 돌아가신 곳이 이곳 길상사의 진영각이니 의미가 있는 곳임에 틀림없다.



 법정스님이 머물던 진명각 내부는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관람이 가능하였다.

평소 무소유를 주장했던 스님의 생활방식이 묻어 있는 곳이었다.

벽면에 스님의 저서들과 평소에 사용했던 바리와 원고지들, 파커 만년필, 파커 잉크, 붓 등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촬영이 불가라서 눈으로만 볼 수 있었다.

특히 평소에 입었던 해진 의복은 법정스님의 평소 이야기 했던 무소유의 진솔함이 담겨있다.

햇빛을 마주하고 방문 앞에 앉아 있었을 것 같은 땔감으로 만든 나무의자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의자를 구입하는데 돈을 들이지 않고 땔감을 이용하여 직접 의자를 만들어 사용한 것만 보아도 얼마나 청빈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서울의 복판에 세워진 작은 절은 서울 전경을 내려다보면서 가볍게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는 곳이었다.

법정스님은 흔들리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하루에 한 시간은 조용히 앉아 있는 습관을 들이라.

푹신한 침대가 아닌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라 라고 하셨다.

모든 것이 찰나에 지나가는 AI시대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조용히 앉아 참선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며, 침대의 푹신함은 게으름에 빠지기 쉽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봄에는 꽃피고

가을에는 밝은 달

여름에는 맑은 바람

겨울에는 눈 내리니

부질없는 생각만 두지 않는다면

이것이 인간세상

좋은 시절 아닌가

단순하고 가볍게

무게를 덜어내면서

새해는 건강하게.


1976년 1월 11일 수류방산에서 반야화에게


-법정스님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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