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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Feb 28. 2024

바람직한 일을 하는 사람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과 함께 하는 사회 모임이 하나 있다.

나와의 나이 차이는 적게는 세 살부터 많게는 열여덟 살 이상 차이가 나는 분들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날짜를 정해서 만나고 회비를 내고, 점심을 먹고, 회장 부회장 총무도 있다.

우리가 만나기 시작한 지 어느덧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중에서 가장 어렸던 내가 한창 젊음이 물오르던 시절에 만났는데 나는 이제 중년이 되었고, 그녀들은 이제 칠십 살을 넘기고, 팔순이 넘어버린 사람들까지 있다.

여성단체 수료식에서 독서모임으로 출발되었지만 세월이 더해져 우리는 점심도 먹고, 차도 마시고, 여행도 다니고, 다양한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2024년 새해를 맞아 첫 번째로 모이는 날이었다.

만나자마자 즐겁게 악수하고 손잡고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담소를 나누는데 갑자기 가장 연장자이신 분이 일어나더니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한다.

그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앞으로 나는 이 모임에서 탈퇴를 할 것이다'라고 선언을 하였다.

여러분들에게는 뜬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최근에 주변의 지인들이 한 두 명씩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서글프고, 당신에게는 한 달에 한 번씩 점심 한 끼를 먹으러 나오는 일도 힘겹다고 하였다.

하지만 어쩌다가 여행을 가거나 할 때는 회비를 내고 나오겠노라고 하였다.

덧붙여 말하기를 '별은 저만치 떨어져 있을 때 더욱 빛난다'라고 해서 당신이 그러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분은 오랫동안 이 단체의 회장을 역임하셨고, 항상 어디에서나 자리를 빛내야 하는 곳에서는 반드시 있으려고 했던 분이셨다.

후일담으로 들었는데 며칠 전에 우리 모임의 간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하였다.

본인이 많이 아팠었는데 회원들이 당신에게 안부 전화를 해주지 않아서 서운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난 다음 모임부터는 안 나갈 거야."라고 했고,

간사는 그때 들었을 때는 그냥 농담인 줄 알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 와서 정색하면서 탈퇴를 한다고 선언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나는 이분과 지인이 된 지 약 20여 년 정도 된 것 같다.

그다지 친하지도 그다지 먼 사이도 아닌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한 시간 정도는 얼굴 보면서 대화를 하는 사이다.

모임에서 얼굴을 보는 것 외에는 단 한 번도 문자나 전화로 안부를 물었던 적은 없다.

그냥 모임회원이니까 만나서 밥 먹고, 이야기하고, 인사를 나누는 것뿐이었다.

특별히 어른으로써 대접해 주고, 챙겨주고 싶었던 분은 아니었다.

아롱이다롱이가 살아가는 세상에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풀 수는 없고, 누구에게나 배려하면서 살 수는 없다.

인간사 반드시 호불호는 있다.

우리 모임도 시간이 흘러 조직이 변해가는데 고인 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모임에서 나가고 싶으면 큰소리로 떠들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조용히 나가면 되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낮은 목소리로 가만히 말한다.


 

 가수 나훈아가 긴 가수생활을 청산하고 마이크를 내려놓고 은퇴를 한다고 선언하였다.

나훈아는 은퇴하는 마음을 담아 다음과 같은 편지를 공개하였다.

 “고마웠습니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발 또 한발 걸어온 길이 반백년을 훌쩍 넘어 오늘까지 왔습니다.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손뼉 칠 때 떠나라'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합니다”

그가 연필을 꾹꾹 눌러가면서 써 내려간 진솔한 글에는 그의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마음의 야야기가 함축되어 그를 응원하는 분들께는 예인으로서 큰 울림을 주었을 것 같다.

자만과 오만에 빠질뻔한 자신에게 주어진 팬분들의 회초리는 겸손과 분발을 일깨워주었다고 하면서 그동안 수많은 사랑을 받음에 고마웠다고 회고하는 가수 나훈아가 여전히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일맥상통하는 사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연히 나훈아의 은퇴소식과 함께 우리 모임의 회원 중 한 명이 탈퇴를 선언하게 되어 갑자기 모임의 분위가 싸~~~  해졌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데 그가 나를 사랑할리 없다. 내가 다른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데 나를 존경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말한 어느 노신사의 말이 떠오른다.

예측컨대 이 분은 아팠을 때 대접받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신에게 안부 인사도 좀 하면서 그렇게 후배들이 자신을 챙겨주기를 바랐는데 그 누구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아서 속상했을 것이다.

 '군자가 배라면, 백성은 물이다.'라고 말한 순자의 말처럼

물은 배를 띄울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것.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누구도 그분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자고로 리더라면 '바람직한 일을 행하는 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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