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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Apr 30. 2024

너의 집 앞이야

 운동하기 위해 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소리 한번 지르고 내려오면서 한강을 한 바퀴 돌고 집에 들어갔다.

집에 도착하여 모자를 벗는 순간 "집 앞인데 어디?"라는 문자가 지인으로부터 왔다.

인근에 있는 호텔에 저녁약속이 있어서 왔는데 시간이 조금 남아서 근처에 온 길에 얼굴 잠깐 보고 가려고 한다고 했다.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인 몰골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러 나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개의치 않아도 되는 사이기에 모자를 다시 눌러쓰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 집 근처에 오니 생각이 났고, 잠깐이라도 얼굴 보고 가려고 한다고 했다.

짧은 시간으로 차 한잔도 마시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잠깐 얘기 나누다 10분도 채 보지 못하고 헤어졌다.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사랑하는 남녀사이라면 이 시점이 심쿵포인트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어."라는 표현은 너무 진부하고 식상하다.

그래서 "나와, 집 앞이야."라는 표현은 훨씬 상큼하고 진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런 나의 생각에는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너의 집 앞인데 나올래?"라고 갑자기 문자를 보내어 만나자고 하면 무례하고, 당황스럽다고 답하는 사람도 있다.


 나 같으면 집 앞에 왔다고 하면서 만나자고 하거나, 집 앞으로 무작정 찾아와서 "집 앞인데 소주 한잔 하자?"라고 건넬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고마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수시로 선뜻 불러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언제 밥 한 번 먹자" "목요일 저녁 6시에 만나자"서로 다른 의미가 있다.

지나가는 말로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인사에는 기약이 없다.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일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없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진부한 인사는 안 하는 게 좋다.

일시를 정해서 밥 먹자고 인사하는 게 예의에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노랫말을 찾아보니 '집 앞이야 나와!' 등 가사에 '집 앞'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구구 절절 모두 애틋한 사랑이야기들이다.

'너의 집 앞이야'

'걷자 집 앞이야'

'야, 나 너네 집 앞인데 술 한잔 할래?'

'너네 집 앞이야'

'집 앞이야. 나와.'

'잠깐 집 앞으로 나올래'

'나 지금 집 앞이야'

제목도 다양하게 '집 앞'이라는 단어로 사랑을 잘도 표현하고 있다.



 늦은 밤 여자친구가 사는 골목길에서 옛 기억을 더듬으면서 바래다주던 익숙한 길을 떠올린다.

그녀가 사는 골목길을 걸으면서 잊은 것 같았는데 잊힌 것이 아니었던 추억에 길을 멈추고 눈물을 참아 본다.


잠깐 집 앞으로 가면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지 물으면서 용기 내어 고백하려고 한다.

고백 후 어색해질까 봐 전하지 못한 말들이 많았었다.

좋아한다고 널 좋아해 왔다고.


'잠깐 집 앞으로 나올래' 할 말이 있는데 용기 내서 준비한 고백 솔직히 말할게.

집에 돌아가는 길에 네가 생각나서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방황하는데

조금씩 네가 생각나고 보고 싶을 뿐야.

내가 사귀자고 할 순 없잖아.


나 혼자 걷기엔 날이 너무 좋아서 그냥 이유 없이 네가 보고 싶어서 '우리 함께 걸을까?

지금 너의 집 앞인데 나올래?'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오늘 네가 생각나서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 오늘이 아니면 못 볼까 봐 찾아왔어.

잠깐만 나와 줄래? 나 지금 집 앞이야.

딱 한 번만 단 한 번만 나와줄래

꼭 한 번만 꼭 한 번만


나야 잘 지내? 아니, 에이~  술 안 마셨거든.
그..... 다른 게 아니고......  혹시 집에 있어?
내가 정말 돌았나 봐. 지금 내가 너의 집 앞으로 막 뛰고 있잖아.......


 아무렇지 않게 잊었다며 얘기하고, 웃어넘기는 추억 즈음으로 지나간 사랑을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가사를 만들어 노래를 부른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집 앞'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조화를 이룰 수가 없다.


 

 운동으로 땀을 많이 흘린 탓에 배가 고팠다.

샤워 후 샐러드 위에 토마토살사소스를 듬뿍 뿌려서 무심하게 와구와구 씹어먹었다.

먹다 보니 나초칩에 토마토살사소스를 찍어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초칩 위에 토마토살사소스를 조금씩 올려서 먹으면 고소하고 입 안에서 침샘이 만족해한다.

바삭한 나초칩과 새콤하면서 달콤하고 매콤한 토마토살사소스는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 같은 맛을 냈다.

아! 사랑은 나초칩에 토마토살사소스를 발라먹는 맛일 것 같다.

이 둘은 참으로 잘 섞여 어우러진다.

프로모션으로 사 온 와인 한 병을 코르크 마개를 따는 선수처럼 마개를 땄다.

전동와인오프너가 있는데도 나는 수동으로 따서 "팍"하고 터지는 탄성의 손맛을 느끼고 싶어 한다.

와인코르크마개를 딸 때마다 느끼는 나만의 희열이 있다.

땀 흘린 후 먹는 나초칩과 토마토살사소스는 와인과 땔감 사이로 아주 잘 어울리는 맛이다.

'집 앞'이라는 단어로 이렇게 장황하게 나를 이유 있는 '와인의 길'로 인도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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