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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Aug 23. 2024

우리 아이 이름을 아세요?

출근을 하면서 텃밭을 돌아보는 일은 나의 하루의 시작점이다.

오늘따라 날이 더워서 텃밭 앞에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루만 풀을 뽑지 않으면 풀이 바로 한 뼘씩 자라난다.

텃밭 30여 개의 풀을 뽑으면서 현관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등줄기에서는 흥건하게 땀이 젖어들고, 코끝으로 땀이 또르르 떨어진다.

힘은 들지만 해마다 텃밭을 잘 가꾸려고 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등. 하원을 하면서 또는 산책을 하면서 텃밭을 지나다니다가 매일매일의 일상들이 관찰되어 아이들의 삶에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어떤 채소들이 잘 자라는지도 알고, 토마토가 열리는 계절도 안다.

사랑초 열매가 풍선처럼 생긴 것도 알고, 청양고추 열매는 작고, 아삭이 고추는 키가 크고, 꽃상추는 적색으로 꽃처럼 화사하고 잎이 크다는 것도 안다.

 부추는 머리카락처럼 잘라주어도 쑥쑥 잘 자라는 것도 알고, 미나리는 습한 땅에서 바닥을 기면서 잘 자라나는 것도 안다.

벼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고, 벼에서 쌀이 생겨나는 것도 눈으로 관찰하면서 알게 된다.

오늘은 어떤 열매가 열렸는지?

어떤 화초에서 꽃이 피어났는지?

화초의 이름들은 무엇인지.. 등등   너무나 많은 것들을 날마다 커가는 식물들을 관찰하면서 배워가기 때문에 텃밭을 가꾸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 아침에 뽑은 풀들을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한쪽에 놓아두고, 어린이집 정문에서 유모차를 밀고 오던 어머니 마주쳤다.

유모차 안에 앉아 발가락을 만지작거리며 ㅇㅇ이가 앉아있었다.

",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 후 유모차 안을 들여다보면서 "ㅇㅇ이 잘 잤어요?"라고 인사말을 건넸다.

옆에 서 계시던 머니는 "우리 ㅇㅇ이 이름을 원장선생님께서 알고 계시네요?"

"나는 우리 ㅇㅇ이 이름을 원장선생님이 모르는 줄 알았죠."라고 하였다.

"그럼요. 알죠."라고 대답을 하고서는 함께 현관으로 들어섰다.


 원장실에 들어와서 한숨 돌리고 땀을 식힌 후 커피 한잔을 타서 마셨다.

그리고 갑자기 오늘 아침 현관 앞에서 마주했던 ㅇㅇ이 머니와의 일화가 떠올랐다.

약간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머니 말씀이 기분 좋게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담임선생님께 어제 오후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나는 그 머니의 태도를 이해하였다.

머니께서 어제 귀가하면서 원장선생님은 우리 ㅇㅇ이 이름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는 것이다.


 의심하는  나쁜 것은 아니다.

워낙 매스컴에서 어린이집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지 않으므로 어린이집에 보내면서도 매사가 의심스러울 것이다.

담임선생님과 달리 원장선생님은 매일 현관에서 만나는 사람은 아니다.

어쩌다가 원장선생님과 마주쳤을 때 자기 아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아마도 원장선생님은 우리 아이 이름을 모를 거야'라고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심신에 해로운 불필요한 의심은 금물이다.

나는 그 반의 아이들을 가장 예뻐하며, 매일 들여다보는 교실이었다.

마음 한가운데 쓸데없는 의심이 가득 채워지면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해도 부질없이 불필요한 의심만 품게 된다.

'호불호'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마음에는 부정과 긍정 두 가지 마음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 같다.



  왼쪽 방향을 보고 있으면 절대로 오른쪽을 보지 못하고, 남쪽방향을 등지고 북쪽 방향을 보고 있으면 절대로 고개를 반대방향으로 돌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자기 마음에 존재하는 무엇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진실도 가려질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을 앞세워서 닦달하다 보면 상대에게 서운한 부분만 보이는 것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내 마음부터 바꾸어보자.

"아, 그 머니!  아마도 걱정이 많으셔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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