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소풍도시락

by 남궁인숙

새벽에 엄마가 싸고 있을 소풍도시락을 기대하면서 잠이 들었다.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 오늘 소풍이지?'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어젯밤에 준비해 둔 간식거리와 엄마가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을 가방에 넣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선생님은 목에 목걸이 이름표를 걸어주었다.

그리고는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했다.

선생님도 배낭을 메고서 우리에게 신발을 신으라고 하신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데 마음이 급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신발을 거꾸로 신었다고 하면서 기다려줄 테니까 다시 바꿔 신으라고 하였다.

나는 마음이 더 급해졌다.

친구들이 현관을 빠져나갔고, 어린이집 앞에 세워진 커다란 관광버스에 친구들이 차례대로 탑승하는 것이 보였다.

오늘따라 신발이 잘 신겨지지 않았다.

속으로는 울고 싶었다.

그렇지만 꾹 참았다.

내가 울면 소풍을 못 따라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소풍 때 이렇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소풍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필사적으로 가고자 하였다.

소풍을 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가 맛있는 것들을 가방이 터지도록 잔뜩 넣어주셨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예쁜 도시락도 싸주셨기 때문에 늘 들뜬 기분이었다.

돗자리를 깔고 옹기종기 모여서 도시락과 간식을 꺼내 놓고 먹으면서 즐기는 특별한 재미가 있었다.

동산에서 친구들과 숨바꼭질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농원으로 가을 소풍을 갔다.

소풍지에 도착하여 아이들의 가방을 평상 위에 올려놓게 하였다.

몸을 가볍게 하고 운동장에서 트랙터 타는 대기줄에 서서 기다렸다.

트랙터를 태워주는 농부아저씨는 아이들을 위해 농장을 한 바퀴 돌아주셨다.

아이들은 왜 이런 시골에 왔느냐고 묻는다.

서울에서 4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데 아이들은 시골에 왔다고 생각하였다.

모래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난타장에서 고막이 터지도록 북을 치고 놀았다.

잠시 후에 푸드트럭(밥차) 농장 안으로 들어왔다.

밥차에서 탁자를 꺼내어 여러 가지 식기류들을 세팅하더니 식판에 1식 4 찬을 차려놓고, 국은 별도의 용기에 담아주었다.


가을소풍이라서 엄마가 싸주시는 소풍 도시락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잠깐 했었다.

교직원들은 부모님께 도시락을 싸달라고 하면 부담스러울 것 같다고 해서 밥차를 불렀던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싸주시는 소풍도시락이 먹고 싶었겠지만 달근한 밥차의 매력에 푹 빠졌다.

오늘의 밥차 아저씨는 성공적이었다.

아이들은 달짝지근한 밥이 맛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싸주시는 소풍도시락이 그리웠다.

엄마의 소풍도시락은 단순한 한 끼를 해결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었다.

소풍도시락의 추억은 한국인이라면 엄마의 정성이 깃든 특별한 의미의 향수 어린 추억이 있을 것이다.

달걀과 햄이 가득 들어있는 김밥, 단무지, 입가심으로 먹을 과일 몇 조각이 들어있을 뿐이지만 엄마의 절절한 사랑이 담겨 있음을 입안에서 감칠맛으로 알 수 있다.

소풍도시락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얘들아!, 엄마가 싸주시는 김밥이 얼마나 맛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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