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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그린 '노란 집'

by 남궁인숙


1988년 프랑스 아를에는 빈센트 반 고흐가 살았던 집이 있다.

고흐의 '노란 집'은 그의 예술적 비전과 이상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작품이자, 고흐의 개인적인 소망과 꿈을 반영하는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닌 상징적인 공간(아뜰리에)이었다.

고흐는 이 '노란 집'에서 자신과 동료 예술가들이 함께 작업하며 서로의 예술적 열정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꿈꿔왔다.

특히, '폴 고갱'을 초대하여 함께 생활하면서 예술적 교류를 나누고 그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종종 불안정한 삶을 살았기에, 노란 집은 그에게 안정과 자립, 독립적이면서도 자신의 예술을 추구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으로 꾸몄다.

노란색을 칠한 이유는 그에게 따뜻함과 희망, 집의 안락함을 의미했다.

고흐는 특별하게 노란색을 좋아해서 이 색을 통해 희망과 낙관적인 감정을 표현했다.

노란 집은 밝고 따뜻한 색채로 가득하여 그가 느낀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하며, 햇살이 가득한 행복한 장소라는 것을 표현하였다.

이 공간에서 창작의 자유를 누리고, 자신의 작품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 '노란 집'에서도 이 자유로운 공간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노란 집은 고흐가 예술에 전념할 수 있는 창의적인 아지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고흐가 꿈꿨던 공동체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특히 고갱과의 갈등으로 인해 외로움과 좌절을 겪고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르게 된다.

결국 그의 꿈이 무너진 장소가 되었으나, '노란 집'이라는 작품은 고흐의 이상과 갈등을 동시에 내포한 상징적인 장소로 남게 된다.

따라서 '노란 집'은 고흐의 예술적 이상과 꿈, 안정과 희망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의 고독과 갈등을 함께 담아낸 작품이었다.



고흐의 예술과 삶에 대한 열망이 응축된 오늘날 고흐의 노란 집은 안타깝게도 원형 그대로 남아있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아를에 폭격이 발생하면서 노란 집은 크게 파괴되었다.

아직도 복구되지 않았지만 고흐의 작품에서 이 집은 여전히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 있으며, 현재 프랑스 아를에서는 노란 집이 있던 자리를 기리는 표식과 함께 그의 발자취를 기념하는 여러 장소들이 마련되어 있다.

프랑스 아를은 빈센트 반 고흐가 그의 생애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시간을 보낸 도시였다.

이곳에는 영감을 받으면서 작업했던 장소들을 따라가면서 그의 작품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받아 탐방할 수 있는 특별한 '반 고흐 도보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이 코스는 고흐가 아를에 머물면서 그린 작품들의 배경이 된 장소들을 직접 걸어 다니면서 볼 수 있는 관광 코스로 고흐 작품과 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매우 인기 있는 투어라고 한다.

도보 코스에는 고흐의 작품과 관련된 장소뿐만 아니라 아를의 문화적, 역사적인 매력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미술 애호가들이나 관광객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는 여행 코스로 알려졌다.

고흐가 아를에서 1988년에서 1988년까지 머물렀던 이 시기에 그린 작품들 중 많은 수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도보 코스를 통해 고흐가 실제로 걸었던 길을 걸으면서 그가 영감을 받았던 장소들을 직접 체험해 보면 그의 삶과 예술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밤의 카페 테라스와 아를의 '포룸 광장' 같은 장소도 방문할 수는 있는 카페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벽에 노란색 페인트 칠을 하여 고흐가 조명에 반사된 색을 표현했던 밤의 카페 테라스를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노란 집이 원래 있던 위치의 주변에는 고흐의 작품을 기리는 전시와 아트 갤러리가 있고, 그가 남긴 예술적 유산을 통해 그의 삶과 작품을 기억하고자 한다.

오늘날 노란 집의 모습은 디지털 복원, 모형, 고흐의 그림 등을 통해 그려지고, 아를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당시 고흐의 삶과 꿈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노란 집은 물리적으로는 사라졌지만, 그 상징성은 여전히 아를과 고흐의 예술 속에서 강하게 남아 있다.



고흐는 '랑글루아 다리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의 배경이 된 장소 '랑글루아 다리'에서 다리와 주변의 풍경을 많이 그렸었다.

아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탐방해 볼 수 있다.

고흐가 귀를 자른 후 입원했던 병원은 현재 'Espace Van Gogh'로 불리며, 방문객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고흐는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도 그림을 아주 많이 그렸다.

현재 이곳은 고흐의 작품과 관련된 전시 및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레알토 성당'은 고흐가 종종 스케치를 하던 장소 중 하나로 아를의 역사적인 명소가 되었다.

아를의 상징 중 하나인 '로마 원형경기장'은 고흐가 자주 방문했던 곳으로 현재도 다양한 행사와 공연이 열리며, 당시 고흐가 이곳에서 느낀 분위기를 상상하며 걸을 수 있다.


고흐의 후손에 의해 프랑스에 남겨졌던 고흐의 작품들은 모두 네덜란드에 기증되어 '네덜란드 고흐박물관'에 가면 진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후손들은 프랑스에서 좋은 일 하나 없이 불행하게 일생을 마친 고흐를 위해, 고흐의 작품을 모두 고흐가 태어난 고향, 네덜란드에 기증하였다.

네덜란드는 두 팔 벌려 환영하였고, 고이 모셔 둔 고흐의 작품만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지어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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