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단열 효과가 있는 지역에 군락을 형성하며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에 편안한 장소로 배산임수 지역을 찾게 된다.
의식주가 해결되면 그다음으로 찾는 것은 교육의 효용성이었다.
요즘에는 아파트를 지을 때 아파트 단지 내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어린이집이다.
인근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어야 명품아파트로서의 존재감이 어마어마해진다.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운영하는 국립학교가 있었는데 ‘향교‘라는 기관이었다.
조선시대 전기에 건립된 교육시설이었던 향교는 대체적으로 고을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향교가 있는 동네라면 그 도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었다. 향교가 있는 동네는 최적의 교육 인프라가 형성되기에 적합했고, 향교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마을이었다.
만경 향교 입구 전경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진 향교가 아직 명맥을 이어 남아있는 향교는 약 230여 개 정도라고 한다. 아직도 남아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마치 대궐 같은 분위기의 규모가 큰 한옥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물론 예외가 있기도 하지만 도시 근교에 민가라고 하기에는 조금 규모가 있는 한옥이라면 확률적으로 봤을 때 향교라고 할 수 있다.
향교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쟁을 겪으면서 요즘의 사립교육기관이라고 하는 '서원'이 생기면서 향교의 발전이 부진하게 되었다.
그래서 효종 때는 향교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지방의 유생이 그 지역 향교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 과거를 응시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오늘날 교육기관에 비유하자면 서울의 국립대학은 성균관, 지방의 공립학교는 향교, 사립학교는 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고종 이후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향교는 이름만 남아있게 되고, 제사를 지내는 기능을 주로 수행하였다고 한다.
지방의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의 선현들의 제사를 지내는 곳인 만큼 향교는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였다.
그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기에 향교 주변에 하마비(下馬碑)를 세워서 향교의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하마비(下馬碑)는 궁궐이나 관아, 향교, 사찰 등의 정문에서 볼 수 있다.
하마비가 세워져 있으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타고 가던 말에서 내려서 걸어서 지나가라'는 의미였다.
말을 타고 온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말에서 내려서 향교 주변을 걸어가도록 방침을 세웠던 것이다.
그만큼 향교 주변을 신성 시 했다고 할 수 있고, 교육기관이니 엄숙하라는 의미이기도 했을 것이다.
외삼문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이렇게 장황하게 '향교를 설명해 보았다. 아버지께서는 평생을 공무원으로 재직하시다가 정년퇴직 후 30년 동안 오로지 선산을 둘러보며 선영을 돌보는 일, 최고의 일가를 유지하기 위한 종친회의 일을 하셨다.
제사와 후학 양성을 위한 향교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시골 마을에 위치한 '만경 향교'에서 청소년들을 지도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셨다.
나의 고향 만경에는 '만경 향교'가 있다.
어쩌다 가족들이 휴일에 아버지와 식사를 하기 위해 만경 아버지를 찾아가면 자식들은 집에서 두어 시간 동안 기다리게 하고서 자전거를 타고서 향교를 다녀오신다.
매주 일요일이 되면 만경 향교의 일요 학교에 부모님께 등 떠밀려 공부하러 나오는 청소년들에게 한 명이 나오든지 서너 명이 나오든지 삼강오륜(三綱五倫), 사서삼경 (四書三經), 사자소학(四字小學)등을 가르치셨다.
사자소학(四字小學)에서의 가르침은 인간이 마땅히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고,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바른 인성을 가진 인간을 육성하고자 함이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의 가르침은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유교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 지침서라고 할 수 있고, 사서삼경 (四書三經)은 유교에서 주장하는 진액들만 모아놓은 책으로 논어, 맹자, 중용, 대학과 시경, 서경, 역경을 말한다.
대성전에서 내려다본 모습
만경 향교에서 일요일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역할은 서당의 훈장 선생님이셨다.
전형적인 유교집안의 종손이셨던 아버지께서는 정말 남다르게 충효사상이 깊으셨기에 어쩌면 이 일이 아버지와 잘 맞았을 것이다.
성균관에서 나오는 '어린이 사자소학 지도서'가 발행되면 아버지께서는 잊지 않으시고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인 막내딸에게 꼭 보내주셨다. 어린이들이 갖추어야 할 올바른 인성을 '어린이 사자소학'을 통해서 배우고 바른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로 키우라는 당부였다.
만경 향교에 아버지께서 가 계시는 동안 집에 남아 있는 자식들은 아버지의 험담으로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 꽃을 피운다.
"요즘 아이들에게 과연 아버지의 가르침이 잘 먹힐까?"가 이야깃거리다.
우리 자식들은 성장하는 내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이 가르침들이 요즘의 청소년들에게 가슴으로 울리는 절절한 교육관을 가진 아버지의 가르침은 자장가처럼 들리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80이 넘은 연세에도 아버지께서는 후학 양성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이 늘 자랑스러웠다.
아버지께서는 자전거 타는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 만경 향교의 일요일을 지키셨다.
그래서 만경 향교는 우리 자식들에게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교육기관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그리운 나의 아버지,
자식들에게는 아버지의 부재는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경 향교 대성전
※「만경 향교」는 조선 태종 7년(1407년)에 만경 동헌 서편에 있는 송전리에 처음 지어짐.
광해군(재위 1608∼1623) 때 불타 없어져 인조 15년(1637)에 지금의 동문내리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