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부엌문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화강암 확독에는 맨질맨질한 타원형의 어른 주먹만 한 동글동글한 돌멩이가 담겨 있고, 그 옆에는 가죽만 씌우면 마치 드럼통 같은 모양의 화강암 절구와 나무로 만든 절구 봉이 놓여 있다. 용기의 모양은 다르지만 둘 다 확독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확독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 물건인지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확독은 솥뚜껑 크기의 화강암 재질로서 내부를 우묵하게 파내어 오돌토돌하게 홈을 내주어 무엇이든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 기능면에서 보면 곡식이나 양념 등을 갈 수 있는 오늘날의 분쇄기나 믹서기의 기능과 비슷하다.
믹서기가 없던 시절에 사용한 확독은 확독 안의 오돌토돌하게 패인 홈이 타원형의 돌멩이가 내용물을 눌러서 돌려주면 믹서기의 칼날처럼 잘게 부수거나 으깨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확독 안에서 곡식은 껍질이 벗겨지면서 부드러운 속살을 내어주어 갈 수 있고, 마늘, 생강, 고추, 깨 등을 갈아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확독은 주로 남부지방에서 쓰였다고 한다. 우리 엄마에게 이 확독은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주방 요리 도구였을 것이다. 엄마는 확독에서 아주 맛있는 전라도 젓갈 김치를 만들어 내셨다.
배추를 다듬어 소금에 절여 놓고, 배추가 절여지는 동안에 고추를 다듬어 마늘과 생강, 젓갈, 찬밥을 넣어 확독에 갈아 양념을 만들었다. 절여진 배추에 갈아진 양념들을 혼합해서 척척 버무려낸 김치 위에 통깨를 살살 뿌려주면 끝!
맛을 감별하기 위해 확독 옆에 쭈그려 앉아 기다리는 나에게 김치 겉절이 쭉 찢어서 입 크기에 맞춰 돌돌돌 말아서 맛보라며 한입 넣어주던 감칠맛이 우러난 그 김치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깨를 볶는 날에는 온 집안에 참깨 향이 코를 찌른다. 볶은 참깨를 확독에 갈아내고, 간 참깨를 걷어낸 자리에 갓 지은 밥을 한 바퀴 돌려주면 참깨 주먹밥이 된다. 그 맛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꿀맛이었다.
확독 안에서 무엇이든 쉽게 으깨어져 가루가 되기에 엄마에게 확독은 음식을 만들 때 만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주방도구였다. 콩을 불려서 갈면 두부가 되어있고, 옆에 있는 절구에 잘 쪄진 찰밥을 절구로 통통 찧어서 확독에서 갈아낸 콩가루를 묻히면 인절미도 되었다.
요즘은 집안에서 확독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옹기로 확독을 만들어서 판매를 하지만 요리 부심이 있는 주부 말고는 확독을 찾을 리가 없다.
무거워서 만들어내도 팔리지도 않을 것이다. 믹서기처럼 편리한 도구가 있는데 굳이 확독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도구를 쓸 줄 아는 동물이므로 오늘날에는 영양소의 파괴는 있겠지만 믹서기로 순식간에 갈아내어 뭐든지 곱게 갈아주는 믹서기를 사용한다.
우리 엄마 김치에는 확독을 사용하여 김치를 만들기 때문에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 있었다. 옛것은 좋은 것이어......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다.
지금도 고향집 부엌 뒤편에는 아직도 엄마가 사용했던 확독이 있을 것이다.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산다면 고향집에 있는 확독을 운반하여 자리를 잡아주고 감치를 담가보고 싶다. 마음만 굴뚝이다.
누군가는 비웃는다. 자네가 무슨 김치를 그렇게 맛있게 담그겠느냐고.
어느 부잣집 정원에 가보니 확독 안에 꽃이 예쁜 부레옥잠을 한가득 심어 놓고 정원을 빛내주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