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조각가, 까미유 클로델

by 남궁인숙

어느 햇살 좋은 날, 파리의 한 작업실에서 한 젊은 여성이 조각상 옆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대리석을 다듬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까미유 클로델. 어린 시절부터 흙을 만지며 조각에 빠져들었던 그녀는 이제 스스로 꿈꾸던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1883년 열아홉 살의 나이에 그녀의 앞에 오귀스트 로댕,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조각가가 나타났다.

"이 작품은 당신이 만든 건가요?"

로댕의 질문에 까미유는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

"네, 선생님. 제 손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그 짧은 대화는 두 사람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 놓았다.

까미유는 로댕의 제자가 되었고, 동시에 그의 친구, 연인, 그리고 뮤즈가 되었다.

43세의 로댕은 그녀의 천재성을 인정하며 함께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냈고, 까미유 역시 그에게서 조각의 깊이를 배웠다.

둘은 서로 사랑에 빠져들었다.

로댕은 그녀의 열정적인 창작 에너지를 사랑했고, 까미유는 그가 가진 예술적 통찰과 따뜻한 인간미에 끌렸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까미유를 깊이 사랑한다고 했던 로댕은 이미 20년 동안 함께 동거했던 연인 '로즈 뵈레'가 있었다.

로댕은 로즈 뵈레를 떠나지 못했고, 여성편력도 있었다.

까미유는 자신이 항상 두 번째 선택일 뿐이라는 사실에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로댕은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지만, 동시에 그녀를 온전히 품을 용기도 없었다.

1892년 배신감에 가슴이 무너졌던 고통스러운 낙태 후, 까미유의 조각 작품들은 더욱 고뇌에 찬 모습이었다.

한밤중, 까미유는 10년간의 로댕과의 관계를 끝내고 로댕의 작업실에서 독립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로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로댕과 결별 후 예술 작업을 계속하였으나 '로댕의 연인'이라는 주홍글씨로 편견이 있었고, 남성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적 상황이 파리 미술계에서 인정받기가 어려웠다.


까미유 클로델의 중년기의 작품들은 그녀의 예술적 정점과 내면의 갈등이 반영된 시기로 그녀의 독립적이고 실험적인 조각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때의 작품은 인간의 감정, 관계, 그리고 존재의 고뇌를 강렬하게 표현하였다.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 '숙명'(The Age of Maturity, 1899)은 그녀의 내면 갈등을 그대로 담아냈다.

그것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까미유 자신이 겪고 있는 사랑의 비극을 표현한 것이었다.

작품 속 남성은 젊은 여성을 등지고 떠나고, 뒤에 남겨진 여성이 절규하는 모습이었다.

남성을 끌어당기는 또 다른 노인의 모습은 어머니나 관습적인 사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작품은 까미유가 로댕과의 이별에서 느낀 감정과,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조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로댕과 로즈 뵈레와의 관계 속에서 겪었던 고통과 갈등이 작품의 강렬한 감정으로 드러났다.

동작의 긴장감, 역동성, 그리고 인물의 표정은 그녀의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조각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까미유 클로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그녀의 개인적 감정과 예술적 통찰이 융합된 작품이었다.


사진출처 - 오르세미술관


왈츠(The Waltz, 1895–1905)에서는 사랑의 열정과 춤의 역동성을 표현하여 두 남녀가 하나로 녹아드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하였고, 유려한 선과 옷의 주름 같은 표현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까미유가 로댕과의 사랑의 환희와 상실의 슬픔을 동시에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춤을 추는 두 인물의 조화로운 모습은 사랑의 완벽함을 나타내지만, 이와 동시에 슬픈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우아하면서도 감각적인 묘사가 특징이며, 그녀의 세심한 조각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사진출처 - 로댕미술관


까미유 클로델의 중년기의 작품들은 감정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매우 심오하였다.

그녀는 단순한 아름다움 이상의 것을 추구하며,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갈등과 감정을 끌어내려했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당시 예술계의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독자적인 관점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그녀의 시대를 앞서간 예술적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파리의 예술계는 이미 로댕의 영향력 아래 있었고, 까미유의 작품은 외면받기 시작했다.

고독과 예술적 억압 속에서 그녀는 점점 불안정해졌다.

"사람들은 나를 로댕이 버린 '삼류 쓰레기 조각가'라고 불러!"
"당신은 내 모든 걸 빼앗아 갔어."
"내 젊음, 내 작품, 내 모든 것을....."
"당신을 만나지 말아야 했어."

인생은 결국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로댕과 그의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음해한다고 믿었고, 이런 망상은 그녀를 파멸로 몰고 갔다.

정부로부터 받던 지원도 끊기고, 결국 1913년 그녀의 가족은 그녀를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다.

그렇게 그녀는 병원에서 30년 동안 외롭게 지냈다.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도 작업실의 망치와 정을 그리워했을 그녀. 하지만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조각들은 그녀의 사랑, 열정, 고통, 그리고 자유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1943년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그녀의 천제성은 인정받게 된다.

까미유 클로델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녀의 작품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녀의 조각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사랑이란, 때로는 나를 찢어놓고 나를 구속하더라도, 결국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힘이었다고."

그녀의 삶은 사랑과 예술이 한 사람을 얼마나 빛나게도, 또 얼마나 아프게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번 주말에는 까미유 클로델을 모델로 한 영화, 이자벨 아자니와 제라르 드빠르디유 주연의 '까미유 끌로델'을 시청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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