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와서 설레는지, 네가 와서 설레는지

하이쿠

by 남궁인숙

약속 장소로 향하던 중, 코엑스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무심코 길 건너편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눈이 와서 설레는지 네가 와서 설레는지"라는 문구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 문구는 2024년 겨울, 서울시의 '서울꿈새김판' 문안 공모전에서 선정된 작품 중 하나의 문구였다.

강남대로, 홍대, 신촌 등 서울시 주요 지역의 전광판을 통해 시민들에게 공개하였다.

전광판의 문구들로 겨울을 맞아 시민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다가올 새해에 대한 희망을 주기 위해 선정하였다고 한다.

때마침 하얀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하얀 눈처럼 가벼운 설렘이 마음에 내려앉았다.

그 짧은 문장이 마치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여, 차 안에 앉아 그대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 광고의 문구는 겨울날의 작은 낭만이었다.

'눈이 와서 설레는지, 네가 와서 설레는지.' 아니면 둘 다인지.......

겨울의 답은 바로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지인을 만나서 전광판의 문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인은 이 말을 듣더니 일본인의 짧은 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본인은 짧을 글을 '하이쿠'라고 부른다고 했다.

긴 서사보다 임팩트가 있는 글들의 조합 같아 보였다.

하이쿠(俳句)는 일본 전통 시의 한 형식으로 5-7-5의 세 줄로 구성된 짧고 간결한 시였다.

구조가 단순하지만 깊은 의미를 담아내는 함축적인 단어와 간결한 표현으로 메시지에는 임팩트가 있는 특징이 있다.

자연과 계절, 일상의 순간을 주제로 삼아 깊은 여운과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이 짧은 시는 단순한 자연의 장면을 묘사하는 것 같았지만, 그 안에는 고요와 찰나의 움직임, 순간과 영원의 대비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단순함 속에서 깊은 통찰을 끌어내는 힘, 그것이 바로 하이쿠만의 매력이었다.

SNS를 통해 검색해 보니' 마쓰오 바쇼'의 유명한 하이쿠가 많이 나와 있다.



'고요한 연못,

개구리 뛰어들어

물방울 튄다.'


'자세히 보니

냉이꽃이 피어 있는

울타리로다.'


요사 부손 (Yosa Buson)의 하이쿠에는

'봄밤의 비,

우산 아래 떨어지는

별빛의 반짝임.'


이사(Kobayashi Issa)의 하이쿠에는

'이 세상은 이슬 한 방울,

그래도

이슬 속 빛난다.'


몇 개의 하이쿠를 읽어보며 드는 생각은 순간의 감정이나 장면을 포착하여 간결하게 잘 표현하였다는 것이다.

짧은 글에는 깊은 감성이 있었고, 철학적 여운을 남겼고, 단 세 줄의 시가 자연과 인간의 감각을 연결하며 깊은 울림을 주었다.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며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하이쿠'의 매력은 단순히 글쓰기 기술을 넘어, 함축적 언어의 힘과 미학적 감각을 알게 하는 것 같다.

지인의 이야기는 나에게 짧은 시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했다.

'하이쿠'를 통해 단어 표현의 함축적인 힘을 배우고, 글쓰기의 새로운 기능을 알고 싶어졌다.

짧은 글이 갖는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한두 줄의 글로도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짧은 글이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긴 여운을 남기고, 상상력을 자극했다.

긴 문장이나 화려한 수사 없이도 감정을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쓰기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하이쿠'로 짧은 글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글은 그 함축성과 여운 때문에 오히려 장문의 글보다 작성하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짧은 시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자신의 글에 그 깊은 의미와 감동을 담고자 하는 열망은 매우 가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한다.


눈이 내리는 건

자연의 선물,

네가 오는 건

내 마음의 선물.


오늘의 설렘이

내일의 추억으로 쌓이기를,

하얗게,

그리고 부드럽게.



지금 이 순간 이불속에 누워서 글을 쓰다가 떠오른 하이쿠,


바스락거리는 이불,

맨살에 퍼져가는

오렌지 향기,

사랑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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