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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

by 남궁인숙

'부(富)는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루소는 말했다.

그 말을 곱씹으면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저택들, 반짝이는 자동차,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값비싼 샹들리에.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부자(?)라고 생각했다.

꽤나 자존감이 높은 아이였다.

성장하면서 서울생활을 하면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부자가 아니고, 그냥저냥 살던 사람이었다.

부에 대한 철학자들의 글을 찾아 읽어보면, 부의 이론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의 기준과 많이 달랐다.

애덤 스미스는 부를 '생산성과 노동의 결실'이라고 했고, 칼 마르크스는 부가 '노동 착취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루소의 정의는 그들과 달랐다.

루소는 단순히 돈이 많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부는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사람마다 '부의 기준'이 다르다는 뜻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언젠가는 나만의 갤러리를 갖고 싶었고, 유명한 작가의 좋은 작품들을 골라서 전시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나는 한 달 한 달 근근이 연명하는 월급쟁이, 그 이상을 넘지 못하고 살고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정말 내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고 있는가?'


언젠가부터 나는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취미 삼아 시작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캔버스 위에 색을 입힐 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년 후, 작은 전시회를 열었고, 나의 그림들전시할 수 있었다.

갤러리의 주인은 못됐지만, 그 후로 나는 이상하게도 내가 부자가 된 것처럼 행복해졌다.


일본에서 온 마야는 내가 10년 동안 타고 있는 벤츠에 그들 모녀를 호텔까지 에스코트하기 위해 차에 태워주자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당신은 부자입니까?(あなたはお金持ちですか?)"라고.

나는 미소 지으며, "네, 나는 내가 원했던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はい、私は望んでいたものを手に入れました)"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녀에게 루소가 말했던 진정한 의미의 부를 지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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