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플루언서가 소개하는 무심히 열어 본 릴스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와인'이라고 자랑하며 맛있게 마시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와인을 좋아하지만, 한 번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와인'을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인플루언서가 릴스에서 황홀한 표정으로 와인을 마시며 그렇게 단언하는 모습을 보고는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어떤 와인이길래?'
나는 인플루언서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모른다'였다.
그렇게 극찬할 정도면 브랜드 정도는 기억하지 않을까?
릴스를 다시 유심히 들여다보며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손에 들린 병의 라벨이 잠깐 스쳐 지나갔고, 몇 번이고 돌려보며 확대해 본 끝에 마침내 이름을 찾아냈다.
Château de Laborde에서 생산한 Bourgogne Côte d'Or Pinot Noir 'Au Prunier' 2022였다.
와인 애호가라면 ‘Bourgogne(부르고뉴)’라는 단어만 들어도 기대감이 솟아오를 것이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은 세계 최고의 피노누아(Pinot Noir)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다.
하지만 수많은 부르고뉴 와인 중에서 이 한 병이 과연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Château de Laborde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생산자는 아니지만, 부르고뉴 와인의 특징을 정교하게 표현하는 와이너리였다.
특히 ‘Au Prunier’라는 이름이 흥미로웠다.
프랑스어로 ‘자두나무’를 뜻하는 ‘Prunier’가 붙은 이유가 있을까?
이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Au Prunier'라는 자두나무가 가득한 오래된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로 생산된 피노누아 품종으로 그래서 이름 붙여졌을 것이다라고 나름 해석해 보았다.
부르고뉴에서 와인은 ‘떼루아(Terroir)’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데, 이 포도밭의 독특한 토양과 기후가 과일 향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피노 누아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2022년 빈티지는 유난히 따뜻했던 해로, 포도가 충분히 익어 풍부한 과일 향과 적당한 산미가 조화를 이루는 훌륭한 균형감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와인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그 인플루언서의 말은 사실일까?
결국 와인의 맛이란 주관적인 것이고, 취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와인의 매력은 단순한 맛뿐만이 아니다.
이 와인을 마셨을 때, 자두나무 아래에서 피어난 부드러운 향과 깊은 맛, 그리고 부르고뉴의 고즈넉한 포도밭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경험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와인'일지도 모른다.
평균 30년 된 포도나무에서 수확된 포도로 연간 약 2,700병만 생산되는 한정판 와인이라면 당연히 마셔보고 싶다.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양조 과정은 손으로 수확한 포도를 100% 제경하여 3일간의 저온 침용을 거친 후, 온도 조절이 가능한 발효조에서 발효하고, 발효 후에는 12개월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되며, 이 중 50%는 새로운 오크통을 사용한다고 한다.
진한 루비색을 띠며, 베리류와 장미, 바이올렛, 흙 내음 등의 복합적인 향을 지녀 길고 우아한 피니시를 느낄 수 있고, 탄닌이 부드럽고, 산미가 살아 있어 약간 매콤한 음식, 오리 요리, 닭고기, 연어, 참치 같은 기름진 생선 등에 어울리고,
트러플이나 버섯을 활용한 파스타요리나 부드러운 카망베르 치즈 등이 안주로 아주 좋다.
부르고뉴의 전통적인 피노 누아 스타일을 기대할 수 있는 와인으로, 가볍고 우아한 와인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잘 맞는다 등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 인플루언서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와인'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한정된 생산량과 독특한 테루아, 정교한 양조 과정이 어우러져 특별한 맛을 가진 와인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인플루언서는 와인소개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와인명을 모른다고 했을 것이다.
'먼치 페퍼(Munch Pepper)'를 팔기 위해 이 와인을 마시면서, 각종 음식을 시켜놓고 먼치 페퍼 한 개씩을 올려놓고 먹고 있었다.
“이거 없으면 와인 못 마셔요! 진짜 미쳤어요!”라는 말과 함께 바삭한 소리를 내며 한 입 베어 물었다.
또 나의 팔랑귀는 작동하며 빛의 속도로 손가락으로 삼성페이 어플을 찾아 속도를 낸다.
먼치 페퍼와 Château de Laborde Bourgogne Côte d'Or Pinot Noir 'Au Prunier' 2022를 구입했다.
며칠 후, 택배가 도착했다.
상자를 뜯자 고급스럽고 깔끔하게 포장된 먼치페퍼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구입해 놓았던 피노누아 와인의 첫 잔을 따랐다.
우아한 피노누아 특유의 붉은 과일 향이 감도는 한 모금을 마셨다.
부드러운 탄닌과 자두, 체리의 은은한 풍미가 입안에 퍼졌다.
솔직히 말하면, 매우 훌륭했지만 '세상에서 가장'이라는 표현을 붙이기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옆에 놓인 먼치페퍼를 집어 입안으로 가져갔다.
바삭한 소리가 났고, 매콤하면서도 짭짤한 감칠맛이 퍼졌다.
그리고 그 상태로 다시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어라?!"
이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와인의 우아한 산미와 먼치페퍼의 매콤한 감칠맛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졌다.
첫 잔을 마실 때보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한 맛이 느껴졌다.
처음엔 인플루언서의 마케팅에 넘어간 게 아닐까 싶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팔랑귀라고 해도 괜찮다.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모르는 맛있는 조합이 많고, 가끔은 호기심과 충동구매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어쩌면 인플루언서는 처음부터 이걸 노렸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