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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놀이하는 사람들

by 남궁인숙

폴 세잔(Paul Cézanne)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The Card Players)' 연작은 무심한 듯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깊은 삶의 단면을 포착해 낸 작품이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 장면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시골의 작은 주막이 아닐까?

하루 일과를 마친 농부들이 흙먼지 묻은 옷을 털고 나무 의자에 앉는다.
바깥은 이미 어스름이 깔리고, 실내에는 등잔 하나가 희미한 불빛을 비추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낡은 카드 한 벌과 싸구려 와인 한 병.
말수가 적은 두 남자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묵묵히 카드를 쥐고 있다.

그들은 서로 친구도, 적도 아닌 ‘동료 농부’였을 것이다.


같은 밭에서 일을 하지만, 다른 삶을 살아온 존재들이다.

카드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침묵의 대화, 삶의 간극을 채우는 방식, 노동과 피로를 잊기 위한 의식(ritual)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눈빛은 치열하지 않지만 깊다.
패를 보는 시선 너머엔 아내의 병세,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 밀린 지주의 세금, 내일 비가 올지에 대한 불안감 등이 교차하면서 눈은 카드를 응시하지만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림 속 담배 연기와도 같은 정적이 느껴진다.

그것은 말보다 진한 유대를 의미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세잔은 그 정적을 색으로, 형태로, 그리고 공간으로 담아냈다.

모든 것이 기울어 있고, 뭉툭하며, 딱딱하지만, 그 속에 있는 삶의 무게는 묵직하게 관람자로 하여금 눌러온다.


폴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The Card Players)' 연작은 1890년대 초반에 제작된 일련의 작품들로 총 5점의 변형된 버전이 존재한다.

이 연작은 세잔이 후기 인상주의에서 정물화와 인물화의 조화를 탐구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물들은 조용하고 집중된 모습으로 카드놀이에 몰입하고 있으며, 불필요한 장식 없이 단순한 배경 속에서 배치되었다.

배경과 주변 요소가 최소한으로 그려져 있어 인물들의 존재감을 더욱 강조한다.

세잔 특유의 색면구성과 입체적인 형태감이 두드러지며, 입체파(Cubism)로 이어질 조형적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

세잔은 색면회화의 선구자는 아니지만, 색을 '입체적으로 사유한 화가'였다.
그는 색을 통해 형태를 만들고, 그 색의 관계를 통해 화면 전체를 구성하는 방법을 고민한 최초의 근대 화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이 색면적 접근은 훗날 피카소, 마티스, 몬드리안, 마크 로스코에게까지 이어지는 현대 회화의 언어를 여는 출발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렬한 대비보다는 부드러운 색조 변화로 인물과 공간을 조화롭게 연결하고 있다.


5점의 작품은 등장인물의 수(2명~5명), 배경 요소, 인물의 동작 등이 조금씩 다르다.

가장 유명한 버전은 2명이 등장하는 그림으로, 2011년 카타르 왕실이 약 2억 5천만 달러(약 3천억 원)에 구매하여 미술계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농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모델은 세잔이 살던 엑상프로방스의 농민들이며, 과장 없이 소박한 분위기로 그려졌다.

노동과 여가가 공존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 당대 프랑스 농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명암과 원근을 해체하면서도 안정적인 구도를 유지하는 방식이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파 형성에 중요한 영감을 주었다.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연작은 세잔이 기존 인상주의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도와 형태, 색상을 훨씬 더 구조적이고 입체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걸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농부들이 조용히 카드놀이를 하는 장면이지만, 그 안에는 세잔 특유의 깊은 사유와 실험 정신이 담겨 있다.

예술사적으로도 의미가 큰데, 이 연작은 후에 피카소와 브라크 같은 작가들이 전개한 입체파(Cubism)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야말로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철학적 탐구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세잔다운 위대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세잔은 평범한 사람들의 침묵 속에서, 시대의 예술을 뒤흔든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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