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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종소리

by 남궁인숙


물기를 머금은 공기가 아침을 감싼다.

어제까지의 차가운 바람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미세먼지 속에서도 햇살은 유난히 부드럽게 내리쬐었다.

출근길에 문득 길가의 가로수에 시선이 머문 건 그런 변화를 알아챈 순간이었다.

'산수유'였다.

가지마다 동그란 노란 꽃이 피어나 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딱딱하게 닫혀 있던 꽃봉오리들이, 이 따스한 날씨에 맞춰 일제히 터져 나온 것이다.

마치 그동안 준비해 온 시간은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는 듯이.


어제와 확연히 다른 날씨에 꽃봉오리가 터진다.

햇살은 한층 부드러워졌고, 바람에는 봄의 냄새가 실려 있다.

겨우내 마른 가지로만 서 있던 나무들이 이제 막 생명을 틔우기 시작하는 모습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는 조용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옷차림도 어쩐지 가벼워 보인다.

나는 잠시 운전을 멈추고, 도로 한편에 차를 세우고, 산수유 꽃을 바라보았다.

노란 꽃송이들은 쪼르르 모여 앉아 해맑게 웃고 있는 듯하다.






산수유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나무다.

그래서일까, 아직 앙상한 가지 위에 수줍게 핀 꽃들은 유난히 눈에 띈다.

누군가는 그 노란 꽃을 '봄의 종소리'라고 불렀다.

정적 속에서 작게 울리는 종소리처럼, 계절의 변화를 조용히 알리는 존재라는 뜻일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산수유는 화려하지 않다.

작고 소박하며, 한 송이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여럿이 모여 피면 금세 풍경을 바꾼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의 마음과도 닮았다.

혼자서는 미약해 보여도, 함께일 때 세상을 물들이는 힘을 지닌다.


봄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긴 기다림 끝에 천천히 피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어제와 확연히 다른 오늘의 빛,

그리고 그 빛에 반응한 작은 생명 하나가 세상을 얼마나 따뜻하게 바꿀 수 있는지를

산수유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피어난 그 작은 꽃 하나가 마음 깊은 곳에 온기를 전해준다.

'이제 괜찮아. 봄이야.'

오늘은 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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