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메이트

by 남궁인숙

모처럼 새벽에 한강에 안개가 자욱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나는 문득 '아가페'를 생각했다

그대가 내 곁에 없더라도

내 마음은 늘 그대를 향해

소울메이트여,

당신의 평안이

곧 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긴 시간을 돌아, 어쩌면 서로를 찾아오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인생에 과연 소울메이트란 존재할까?

수많은 얼굴을 지나쳐가며,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잃고,

또 때로는 잊는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도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엔, 이름 붙일 수 없는 그리움이 숨어 있다.

마치 언젠가 만날 운명이지만,

아직 다다르지 못한 존재처럼.


소울메이트란 단어는 마치 신화처럼 들린다.

플라톤은 『향연』(Symposium)에서

'인간은 원래 하나였다'라고 했다.

신의 질투로 반쪽으로 쪼개졌고,

그래서 평생 그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헤맨다고.

그 이야기엔 이상과 슬픔이 뒤엉켜 있다.

우리는 자신조차 다 알지 못한 채, 타인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해 가니까.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조용히 흐르고,

그 어떤 말보다 침묵이 더 깊은 이야기가 되는 사람.

그는 나의 '소울메이트'였을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던 누군가였을까?


우리는 ‘운명’이란 단어에 자주 흔들린다.

그러나 진짜 소울메이트란, 운명이 이끌어준 사람이 아니라

내가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서로의 어둠까지 감싸 안으며 살아낸 관계 속에서 천천히 만들어지는 이름이 아닐까?


소울메이트는 늘 완벽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때론 서툴고, 아프고, 도망치고, 다시 돌아온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알아간다.

그래서 어떤 만남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 이전과 이후로 삶을 나누게 할 만큼.


나에겐 그런 사람이 있었던가.

있었다면, 나는 그 사람의 소울메이트였을까?

혹은, 아직 나는 내 소울메이트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삶은 그 질문의 여운 속에서 더 깊어진다.

사랑은, 결국 서로를 알아보고도

그 자리에서 마주 선 용기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AGAPE는 '조건 없는 사랑'을 말한다.

에로스는 '열망'이었고, 필로스는 '우정'이었다.

하지만 아가페는 그 어떤 이유도 조건도 없는, 다만 '존재하기에'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불안도,

상처도,

그저 모든 것을 감싸 안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 너의 존재를 사랑한다.”라고 말해주기를 원한다.


사랑은 에로스에서 시작하지만,

점차 진리와 선(善)을 향한 정신적 사랑으로 승화된다.

이 흐름은 아가페적 소울메이트 개념과 매우 닮아있다.

소울메이트가 단순히 로맨틱한 대상이 아니라,

내 영혼의 거울이자 삶의 동반자일 수 있다면,

그 관계는 아가페로 향할 수 있는 토대를 갖는 셈이다.

소울메이트는 아가페로 성숙해질 수 있다.

그리고 아가페의 사랑은, 운명적 인연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사랑이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진다면,

그건 단순한 끌림을 넘어선, 영혼의 헌신이다.


그가 나의 영원한 소울메이트이자 동반자였으면 좋겠다

함께 걷는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더라도,

그의 옆이라면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는 그 사람.

눈빛 하나로 안심이 되고, 침묵 속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

그가 있기에, 나의 오늘이 고요히 빛나는 것처럼.


누군가와 인생을 함께 나누는 일은,

'하루하루를 선택하고, 이해하고, 감싸는 일'이다.

그 모든 과정을, 그와 함께하고 싶어진다.

영원이라는 말이 조금은 두렵지 않은 이유는

그가 소울메이트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의 계절까지도"라고 말하고 싶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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