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민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오후가 깊어가고, 저녁이 내려앉아도 수지의 휴대폰은 침묵만을 품고 있었다.
처음엔 애써 태연한 척, ‘바쁘겠지’라며 마음을 다독였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수지의 마음은 서서히 쓸쓸함에 젖어들었다.
수지는 참지 못하고 손끝으로 메시지를 건넸다.
“하루종일 무 소식이야?”
잠시 뒤 민호에게 도착한 답장은 너무 짧았다.
“무소식이 희소식.”
그 한 줄이, 수지의 마음 한구석을 조용히 찌르고 지나갔다.
분명 장난일 테지만, 지금의 수지의 마음엔 우스운 농담이 아니었다.
수지는 쓸쓸한 마음을 "그건 웃기는 얘기고"라는 짧은 문장으로 담아 보냈다.
"하루종일 핸드폰을 끼고 사는 사람이 몇 마디 문자 보낼 시간도 없어?"라고 다시 문자를 보냈다.
그 후로, 민호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다음 날, 수지 역시 자존심을 내세워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민호는 자기 동선을 알리는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수지는 무심한 척, 메시지를 읽고 30여분 동안 답을 하지 않았다.
밤이 되자 수지는 참지 못하고, 민호에게 문자로 물음표 하나만 남겼다.
민호는 즉시 “뭐야?”라는 퉁명스러운 답장이 왔다.
"뭐 하냐고 물었어."
“자기도 가끔 이렇게 보내잖아.”
"이것도 웃긴 얘기?"
침묵과 짧은 말들이 그 둘 사이를 메웠다.
수지는 밤새도록 한잠도 자지 못했다.
민호에게 그렇게 대응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해서 새벽에 먼저 사과의 뜻으로 안부 문자를 건넸다.
민호는 일상적인 공적인 문자 메시지만 보내왔다.
수지는 출근을 해서 장문의 메시지로 마음을 풀어내듯 수지의 감정을 고백했다.
민호는 메시지를 읽고 나서 “그런데 너는 웃기는 얘기고.. 그렇게 말을 하니?”라고 답을 보내왔다.
돌아온 답장은 또다시 수지를 서운하게 했다.
그렇지만 수지는, 태연하게 "그럴 때는 한 번쯤 그래, 보고 싶어서 투정 부렸을 테니 오늘은 내가 넘어가 줄게. 이렇게 웃으며 받아주는 여유가 삶을 좀 더 유연하게 하지."라고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민호의 마지막 말은 그러니까 '말을 조심히 하라'였다.
수지는 괜히 투정을 부린 것 같아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민호는 여전히 자기 기분만 앞세웠다.
만 하루의 침묵 끝에 수지는 조심스레 먼저 문자를 했는데 결국 상처만 남았다.
수지의 감정은 위로받지 못한 채,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는 벽만 생겼다.
하루 종일 불안했던 마음이 슬픔으로 가라앉았다.
남녀관계란 이렇게 작은 말 한마디에 흔들릴 수도 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 예상보다 더 멀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서운함에 갇혀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심을 담은 사과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의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감정일 것이다.
수지는 울고 싶었지만 조금 더 천천히, 자기감정과 상대방의 감정을 함께 생각하며 말을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
관계는 서로를 배려하려는 작은 마음과 상처 난 마음을 달래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수지의 이야기를 듣고 상담심리학적인 측면에서 풀이를 해보았다.
수지가 느낀 서운함:
애인에게 “종일 무소식이야?”라고 할 만큼 보고 싶고, 소중하니까 서운한 감정이 올라왔다.
상대의 반응: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장난이나 습관적인 답변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정서적으로 거리 두기를 하거나 본인만의 방식으로 대화를 넘기려 했을 수도 있다.
수지의 솔직한 감정 표현:
“웃기는 얘기고”라고 말한 건, 사실 종일 기다리다가 화나고 답답한 마음이 수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이다.
(상대방 입장에선 장난처럼 들릴 수도, 비아냥거림으로 들릴 수도 있다.)
상대의 역반응:
“말조심하라”는 말은 사실 본인도 감정이 상해 있다는 신호이지만, 한편으로는 수지도 상처받았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감정만 앞세우는 경우다.
서로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잠시 시간을 두어야 한다.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말을 주고받으면, 오해만 더 커질 수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부드럽게 다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예)
“아까는 내가 서운해서 감정적으로 말한 것 같아.
사실 연락이 없으니까 나도 많이 보고 싶었어. 너도 혹시 기분 상했다면 미안해.
우리 서로 조금 더 솔직하게 마음을 이야기해 보면 좋겠어.”
상대방의 마음도 들어보고, 내 감정도 솔직하게 전달하자.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들어보고, 나 역시 “나는 네가 무관심해서 그런 줄 알고 속상했다”라고 담담하게 표현해 보자.
이런 상황이면, 정말 누구라도 속상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화가 나고 속상한 마음을 느끼는 건 상대를 사랑하고, 관계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감정이 오갈 때마다 상처받는 건, 두 사람이 진짜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꼭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서로의 마음을 천천히, 조금 더 진심으로 다시 나누다 보면, 이런 서운함도 관계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될 것이다.
'당신은 상처를 받을 만큼 충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려운 게 인간관계다.'
이 짧은 문장은 사랑과 인간관계의 본질이 잘 드러난다.
사랑을 깊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처받을 위험도 감수한다는 뜻이다.
‘어려운 인간관계’란,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자 할 때 흔히 마주치는 난관이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개방과 수용, 그리고 취약함을 포함하고 있다.
누군가를 충분히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을 열고 자신의 연약한 부분까지 내보이는 용기다.
그러나 마음을 연다는 건, 동시에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상처를 받을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랑이 깊을수록 인간관계는 복잡해지고, 때로는 아프다.
심리학자 존 가트맨은 친밀한 관계에서 충돌과 회복이 반복되는 것이 건강한 관계의 핵심이라고 했다.
즉, 상처받지 않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상처 이후에 회복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상처를 받을 만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그 안에서 성장과 이해, 용서를 배워가는 성숙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