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사랑니를 뽑았다.
구강에 칼이 들어가는 일이니, 엄연한 수술이다.
식사는 당연히 부드러운 죽으로 해야 한단다.
우리 아들은 ‘의사 선생님 말씀은 곧 법’이라 여기는 사람이다.
약 복용 시간도 초 단위로 맞춰 먹는 성실한 성품. 의사의 권고사항이라면 설사 세끼 죽을 삼일 내내 먹어야 한다 해도 그저 묵묵히 따른다.
오늘이 바로 그 수술일.
그는 출근 전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오늘이에요.”
그 한마디는 단순한 통보가 아니었다.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은근한 경고이자, 수술 후 식사를 준비하라는 신호였다.
퇴근길,
나는 죽을 사기 위해 곧장 백화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백화점엔 ‘죽 코너’는 없었다.
가까스로 반찬가게에서 죽 비슷한 걸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묻자, 점원이 자신 있게 삼계탕을 권한다.
찹쌀과 녹두가 들어 있어 부드럽다며, 죽으로 손색없단다.
“이왕 오신 김에 반찬도 사세요.
지금 마지막 타임이라 많이 드려요.
하나에 오천 원인데 두 개 사시면 하나 더 드려요!”
순간 흔들렸다.
‘이건 혜택이야’라는 생각에 나는 세 개를 골랐다.
그러자 점원은 통 크게 외쳤다.
“두 개 더 골라보세요!”
그러더니 8팩을 포장해 주고선, 가격표도 착착 붙여준다.
'난 세 개를 원했는데 왜 이렇게 많이 포장하지?'
순간적으로 의아했지만 백화점 문 닫는 시간도 임박했으니 그냥 덤으로 준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이래도 되는 건가?’ 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으로 계산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집에서 영수증을 펼쳐 본 순간, 이마를 쳤다.
24,000원.
그 많던 덤은 없었다.
단지, 내가 산 대로 가격을 지불했을 뿐이다.
그 점원의 착각이었을까,
상술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말을 잘 못했나?
순간 헷갈렸다.
그 시각, 아들은 입 안에 거즈를 물고 있었다.
죽을 먹을 수 있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리고 쿠팡 박스가 도착했다.
박스 안에는 인스턴트 죽 여러 개, 이미 아들도 준비해 둔 것이었다.
의사의 말대로 며칠간 죽만 먹을 각오를 한 것이다.
아마도 그는, 설명서에 ‘3일간 죽 섭취’라고 쓰여 있었다면 그 말 그대로 따를 것이다.
그의 바른생활은 그만큼 철저하다.
사랑니 수술은 아들의 인생에서 작은 일이지만, 그에겐 철저히 ‘지켜야 할 약속’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약속을 함께 준비하는 나에게도, 그것은 어쩌면 일상의 한 장면으로 남을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