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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큐레이터 Jan 06. 2024

때론 물러서도 괜찮아

은행 퇴사 후 필라테스 강사가 되기까지

2024년이 되었고 퇴사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유명하지 않은 수도권 대학 출신에 마땅한 스펙도 없이 운이 좋게 은행에 입사하게 되었지만, 보수적인 분위기, 선배 직원의 텃세, 숨 막힐 듯 쌓여 가는 업무에 나는 점점 건강을 잃었다. 


책임감이 강한 성격과 완벽주의 성향 덕분인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직내에서 유능한 직원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월 500만원이 넘는 급여가 찍혔음에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에게 돈은 돈이 아니라 숫자에 불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 경험이 하나도 없었기에 겪었던 사회 초년생의 치기 아니었을까?


매일 그만두고 싶은 마음, 이대로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삶의 의미를 잃게 되자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퇴사의 완벽한 타이밍을 노리던 그 당시에 전국에는 스마트 스토어, 구매 대행, 무자본 지식창업과 같은 온라인에서 월 천만원 벌게 해준다는 강의들이 속출했고, 뭔가에 꽂히면 올인하는 성격을 가진 나는 누군가 해냈다면 나도 무조건 해낼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퇴사하고 온라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나도 남들처럼 3개월만에 월천만원을 찍고 현재는 강남에서 수 많은 수강생들을 거느리며 한강뷰가 보이는 아파트 구매를 목표로 자금을 모으고 있다는 결말이면 좋겠지만, 내가 1년 동안 얻은 수익은 1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애초에 짧은 시간에 월천만원 버는 것 사기아니냐? 그걸 속냐?'라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실제로 내 주위에 그렇게 벌고 있는 지인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주변에 없기에 믿지 못할 뿐. (사람들은 꽤 자신들이 경험하고 본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성공과 행복과는 먼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다)



차라리 몰랐다면 그런 희망조차 없겠지만, 나는 나보다 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던 동료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곤 했었다. 



같이 시작했고, 같은 것을 배웠고, 같은 프로세스를 거치고 있는데 왜 나는 잘 되지 않지? 아이템이 문제인건가? 라고 생각했지만, 진실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단 하나였다. '나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내가 보람 있는 일을 하는데 더욱 큰 행복과 기쁨을 느낀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다시 6개월의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돈을 싫어한다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이 나와 맞다는 것이다. 싫어하는 것은 죽어도 못하는 성격이고, 원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 10가지를 포기하는게 힘든 사람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돈을 꽤 많이 벌고 있는 동료를 보고있으면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도 높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 동료를 보며 깨달았다. 나는 저 경지에 오르지 못했기에 돈을 벌지 못했던 것이라고)


과정이 즐겁지 않다면 곧 바로 포기하는 빠른 결단력까지, 월천만원 버는 사람들처럼 되지 못하는 이유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노력한다고 했지만 진심으로 노력하지 않았고, 지속할 생각이 없었던 나는 결국 온라인 사업하겠다고 갑자기 일을 그만둔 철없는 29살에 지나지 않았다.


인생의 방향성을 잃자 한순간에 나의 모든 것이 곤두박질쳤다. 매일 누워만 있으니 살은 쪘고, 폭식증으로 음식을 조절하지 못했으며, 넷플릭스만 보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고민만 많았다. 일은 하고 싫었고 회사에 들어가기는 더더욱 싫었다. 정말 답이 없는 인생이었다. 


사람은 생각만 하면 썩는다. 말 그대로 고여서 썩어버린다. 나는 내 모습이 한심했고, 견딜수가 없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생각만 하고 고민만 하던 때 선택했던 것이 필라테스 강사였다.


운동은 어릴적부터 했던터라 배우는데는 자신이 있었고, 그 어떤 자격증도 없던 내가 도전할 수 있고 그나마 잘할 수 있었던 것이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자격증 준비할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온라인에서 월천만원 벌 수 있을거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고, 그 기간을 버텨낼 수입이 필요해 보험으로 자격증을 딴 것이었다. 


난 내가 목표했던 것에서 잠깐 뒷걸음질 쳤다. 플랜비를 세워서 실행하기 시작했다. 


헌데, 플랜비가 플랜에이가 되버렸다. 누구는 필라테스 자격증 몇개월이면 따는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나는 이 자격증이 그렇게 쉽게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몸에 대한 공부를 시작으로 내가 직접 움직이며 어떻게 필라테스를 안내해야할지 충분한 연습과 연구의 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절대 이 자격증을 손에 쥘 수 없고, 쥐었다 해도 강사로서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난 은행을 준비했던 기간보다 필라테스 자격증을 준비한 기간이 훨씬 길었다. 일주일에 3번은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연습장에서 동작들을 움직이며 나를 천천히 빌드업해갔다. 


문제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난 후 발생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자격증을 발급하고 나니,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는 사업을 하려고 퇴사한 건데 강사하면서 시급 3만원 받으려고 시작한게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취업준비생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서류는 대부분 떨어졌고 어렵게 잡은 면접도 모두 떨어졌었다. 불현듯 공포감이 몰려왔고, 또 다시 일반 회사로 들어가야한다는 조급함이 들었다.


그 어디에도 나는 내 마음을 붙일 수가 없었다. 당시 나를 지지해주던 남자친구도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이별을 고했다. 이렇게 방황만 하다가는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 조차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면접을 봤고 결국 합격을 했다. 



지금은? 생각보다 필라테스 강사가 너무 적성에 잘 맞는다. 플랜비로, 뒷걸음질치다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한 일인데 천직이었다. 아직 수업시간이 부족하지만, 매달 급여는 오르고 있고, 내가 수업을 했던 회원분들이 몸이 좋아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나 때문에 재등록을 하는 회원들이 늘었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오픈 센터에 오전 강사로 추천되어 현재는 그렇게 들어가기 힘들다는 오전 강사 티오에 합격된 상태이다. 


좋아하는 일에 열정이 생기자 나타난 결과였다. 지금 비록 은행에 다닐때보다 급여는 훨씬 적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행복한 삶이라는 단어가 추상적이고 멀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많이 가까워졌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만약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만약 온라인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나는 필라테스 강사에 도전하려고 했을까? 아마 나만의 안전지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영영 나의 적성은 발견하지 못한채 살아갔을 지도 모른다. 


운동이 나와 맞아서 운동을 아이템으로 다시 온라인에서 나의 영향력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배운것들을 알려줄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척추 질환을 가진 나의 아버지, 아킬레스건 파열로 재활이 필요한 나의 오빠에게도 건강해질 수 있는 동작들을 알려줄 수 있어서 더욱 보람이 있다. 


다른 선생님들의 필라테스 시퀀스 영상과 해부학에 관한 영상을 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지만 나는 이런 귀한 자료를 온라인에서 보고 내 수업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자 바닥을 쳤던 자존감이 다시 올랐고, 내 통장 잔고도 다시 채워지고 있다. 


분명 누군가는 나와 같은 어려운 시기를 겪으리라고 생각한다. 미래가 막막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순간들이 셀 수 없이 많겠지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곡 차곡 쌓아간다면 기회가 생기고 어느순간 꿈에 맞닿아 있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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