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호-동아리실의 과자는 누가 다 먹었나
대학 시절 내가 들었던 동아리는 두 개였다.
하나는 학과에서 만든 동아리(과동아리?)라서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입했었다. 시험 기간이거나 조별 과제가 있을 때 그 동아리실은 학과 사무실 즉 과사에 온 것인지 헷갈리는 곳이었다.
또 하나는 별자리 동아리였다. 역시 1학년 때 가입했었다. 그때는 동아리에 대한 환상이 있었나 보다. 나는 우리 동아리가 천문학 지식을 뽐내는 곳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별 뜰 때부터 술 마시기 시작해서 새벽 별이 지기 전까지 술을 마시는 곳이었다. 동아리실은 숙취를 깨기 위한 용도로 쓰였고, 동아리실을 들어설 때마다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과사의 클론 같은 학과 동아리실은 단정한 편이었다. 남자 선배들이 엄청 깔끔했기 때문이다.
이 동아리는 남녀 비율이 비슷한 편이라서 남자팀과 여자팀이 일주일씩 번갈아 청소를 했다. 팀 내에서 선배들은 감독 및 점검을 했고, 후배들끼리 구역을 나눠 청소했다. 남자팀이 청소를 맡은 날에 말년 병장 같은 선배들이 동아리실의 청결을 불시점검할 때는, 과제보다 청소를 먼저 해야만 했다.
그때도 그렇게 청소를 하던 때였다. 동아리실에는 아주 큰 옷장이 하나 있었다. 학교 근처에 살다가 졸업하는 선배가 주고 간 가구였다. 그날따라 그 옷장이 신경 쓰였다. 콕 집어 말하자면, 천장과 거의 맞닿아 있는 옷장의 윗부분이 왠지 나를 자극했다. 굳이 의자를 밟고 올라섰다. 먼지가 잔뜩 쌓여 있을 모습을 상상하며.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먼지 대신 과자 한 봉지가 있었다. 그 손이 가는, 새우 과자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민이 그 옷장 정리 및 청소 담당자였다. 왜 과자를 올려뒀냐고 물어보니, 이 과자를 엄청 좋아해서 눈에 안 보이는 곳에 하나씩 올려놓고 너무 먹고 싶을 때 꺼내서 아껴 먹었다고 했다.
졸업한 지 꽤 되었지만, 종종 나는 숨겨둔 과자 한 봉지를 꺼내서 행복하게 아껴 먹고 있는 민을 상상해 본다.
나중에 혹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민이 좋아하는 과자를 곳곳에 숨겨두는 이벤트를 해주고 싶다는 꿈도 꿔 본다....
배경음악: [MV] Zion.T(자이언티) _ Yanghwa BRDG(양화대교): http://youtu.be/uLUvHUzd4U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