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호-애거서 크리스티? 민거서 크리스티!
민은 게임을 잘했다.
언젠가 민과 여자 아이들이 술집에서 레몬소주를 갖다 놓고 있길래 합석해서 같이 게임을 하며 논 적이 있다.
마피아 게임(시민 게임?)을 해 봤는데 민은 그 게임을 처음 해 본다고 했다.
조금 설명하자면 시민과 마피아로 역할을 비밀리에(?) 나눠서 약간의 이야기를 나눈 뒤에 "너 마피아지?" 하고 의심 가는 사람을 지목해서 맞추는 게임이다.
그런데 아주 잘했다. 민의 거짓말 탐지 기술은 아주 단순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마피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시민은 자신이 시민임을 애써 증명할 필요가 없지만 마피아 입장에서는 자신을 시민으로 꾸며 진실인 듯이 증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슷한 것이지만 진실이 아닌 것을 구분하려면 단순해져야 하는 걸까.
또 아이스크림31 게임을 했다.
이 게임은 1부터 31까지 숫자를 사람마다 1개~3개 불러나가는 것이다. 마지막 숫자인 31을 부르는 사람이 술래(?)가 되는 게임이다. 술을 마시는 걸로 벌칙을 정했다.
민은 이 게임도 처음 해 본다고 했다. 그런데 참 잘했다. 비법을 물어보니 이렇다. 3개를 부르기 전 숫자인 28을 누가 부를지를 염두에 두고 게임을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이 게임에 그런 요령이 있었구나 하고 놀랐다.
민은 술자리에서 정하는 뽀뽀 등의 스킨십 벌칙을 질색했다. 처음 보는데 뽀뽀를 해야 한다니 그건 너무 동물적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 짓궂은 벌칙에 걸렸을 때 묵묵히 하는 걸 보면 민은 분위기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아마 그걸 정말 끔찍한(?) 벌칙으로 생각하며 할 것이다. 흑기사를 해 주지 못한 건 우리가 그저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민과 내가 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민이 내게 했던 스킨십은 내 팔꿈치 쪽 옷깃을 살짝 잡는 정도였다. -물론 우린 친구였지만 가끔 손을 잡을 때도 있기는 했다. 가령 민이 한강에 같이 가자고 조를 때나, 한강에 가자고 꼬실 때나, 한강에 산책 가자고 이야기할 때나 말이다.
처음 내 옷깃을 잡았을 때 나는 팔꿈치에 불이라도 붙은 양 화들짝 놀랐다. 내가 잘못해서 닿은 줄 알았던 것이다. 스킨십을 몹시 꺼리는 그녀에게 말이다. 그녀가 내 놀란 눈빛을 받아 저편에서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가리키며 "조심해."라고 말한 후에도 나는 자꾸 그쪽 팔꿈치를 흘깃흘깃 봤었다.
반면 나는 어떤 스킨십도 그녀에게 시도하지 못했다. 다음에 민을 만나면 악수라도 시도해 봐야겠다. 과연 그녀는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나의 손을 잡아줄까.